동생은 옷을 좋아해서 그런지 예쁜 옷을 잘 골라 입는다. 자기만의 옷 스타일이 있어서 누가 뭐래도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한동안 벌룬 팬츠, 와이드 팬츠라고 불리는 통바지를 즐겨 입었는데 내 눈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가끔 보면 검도복을 입은 것 같기도 했지만) 엄마 눈에는 별로 였는지 옷 스타일 좀 바꾸라며 단정하게 입으라는 잔소리를 하셨다.
동생은 그날도 여느 때처럼 넓은 통바지 차림으로 집에 왔다. 문득 여자 친구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 "여자 친구는 다른 옷 입으라고 안 해?"
- "응 그런 소리 안 해."
- "만약에 여자 친구가 다른 스타일로 입으라고 하면 입을 거야?"
- "아니, 그런 거 가지고 뭐라 하면 안 되지."
- "오, 멋진데"
여자 친구가 원하면 그 스타일대로 입을 법도 한데 거짓으로 자신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동생이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다. 동생도 여자 친구의 옷 스타일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터치하지 않을 테니 너도 터치하지 마' 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 하거나 자신을 누군가의 틀에 맞추기보단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멋있어 보였다.
반면 나는 평생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썼다. A처럼 살면 당당해 보일 것 같았고 B처럼 살면 행복할 것 같았으며 C처럼 살면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가 되면 날 더 좋아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려 애쓸수록 난 아무도 아니었다. A, B, C 그 누구도 될 수 없었으며 그 속엔 나도 없었다. 당당해지지도 않았고 행복해지지도 않았으며 주위에 사람이 넘쳐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불행해진 것 같았다. 내 진짜 모습은 속이고 다른 사람인 척했으니 그게 잘 될 리가 없었다. 그저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결국 내게는 이도 저도 아닌 세월만 남았다. 껍데기만 남은 사람, 점점 더 행복과 멀어진 사람이 되어 불행해져 갔다. 그 가짜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 것처럼 난 아무리 노력해도 저렇게 될 수 없구나 하는 착각에 빠졌다. 애초부터 그 사람이 될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오롯이 나여야 했다.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했어야 했고 내 모습 그대로를 봐줄 사람들을 찾았어야 했다.
사람은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나면 받아들이고 말고는 상대방의 몫이다. 내 모습을 가짜로 꾸며 기어코 남의 눈에 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굳이 그 사람이 날 좋아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언젠가 내 모습이 아닌 삶에 지치기 마련이고 머지않아 본연의 내 모습이 나타날 테니까.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과 삶 속에서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가짜 모습으로 뭉뚱그려진 삶에 행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