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컨설턴트로 일하며 알게된 것들
외식 잡지사 입사 후 내가 투입된 곳은 콘텐츠 컨설팅팀이었다. 콘텐츠? 컨설팅? 어떤 일을 하는 부서인지 한마디로 뭔가 명료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지만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멋있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첫 직장치곤 과분한 명함이었다. 어떤 일이든 일의 시작점은 방향성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무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애송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나의 외식업 첫 단추는 컨설턴트였다. 대부분의 20대가 그렇듯 나 역시 스스로를 포장하기 바빴고 알맹이 없는 초짜 컨설턴트는 그때 당시 사람을 만나 명함을 건네는 일을 매우 좋아했다.
어떤 일이든 일의 시작점은 방향성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무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주로 부진점포를 경영 개선을 통해 번성 점포로 도움을 주거나, 신규 식당 기획을 요청받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했다. 가게 하나에 적어도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의 금액이 지출 되는 일이니 준비가 안된 분들에게는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브랜드 기획을 할 때면 아침 회의마다 대표님은 아이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략하게 정리하는 일을 지시하셨다. 초반에만 해도 힘이 넘쳤던 터라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보고 듣기 좋은 내용으로만 포장해서 보고 드렸다. 당연히 그 내용이 반영될 리가 없었다. 나는 대표님이 만드는 기획안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실무자의 역할을 했다. 개인적인 기획력보다는 대표님이 의도한 내용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청취력과 이해력이 중요한 일이었다. 나도 언젠가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대표님의 충성스러운 앵무새가 되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외부에서는 자신 있는 컨설턴트 이미지를 놓지 못했다. 타이틀이라는 것은 아주 달콤한 유혹이었다.
기획 일이라는 게 번쩍 하는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아이템과 기본 콘셉트가 생성되면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다. 그에 맞는 부가적인 내용들이 바로바로 생각나면 좋으련만, 경험이 없는 내겐 브랜드에 맞는 단어 선택부터 스토리텔링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의 자료 조사가 필요했다. 아직 경험과 스스로의 확신이 없는 나는 대표님의 말 한마디에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템에 맞는 사진 촬영을 구상하고 촬영 일자를 조율하고 현장 진행을 한다. 그리고 디자인 작업을 맡기고 출력 업체로 전달한다. 공사 업체와 일정을 협의하고 그랜드 오픈일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가게 홍보를 위해 사전 인플루언서 섭외를 해야 할 때는 따로 사적인 시간을 내어 그들과 술자리도 마다 하지 않는다. 을의 입장이 되어 매장 오픈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적극적으로 초대를 한다. 이때 중간중간 과정은 대표님게 상시로 보고가 되어야 한다. 식당을 오픈했다고 결코 끝난 게 아니다. 현장 피드백을 빠르게 정리하여 개선될 수 도록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곧 돈이었다. 실수를 하면 책임의 소재가 커지게 된다. 초년생인 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힘들고 귀찮은 일들을 담당하는 게 내 업무였다. 여기에 복사하고 자료 정리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속된 말로 막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나, 밖에 나가서 만큼은 여전히 나는 멋있는 컨설턴트였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속된 말로 막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나, 밖에 나가서 만큼은 여전히 나는 멋있는 컨설턴트였다.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나는 프랜차이즈 대표에 외식 브랜드 기획자에... 보기 좋은 타이틀은 다 갖고 있다. 하지만 직영점에 가면 술병 치우고 손님이 가신 테이블의 음식물을 쓸어 담고 가시는 길 인사하는 일을 여전히 한다. 사람들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또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원하는 타이틀을 지키려면 그에 수반되는 필요 일들을 해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하기 싫은 일지라도. 외식업뿐만 아니라 모든 업이 갖는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어쩌면 20% 남짓 차지하는 보이고 싶은 일 때문에 80%나 되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창업에 덤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위해 창업을 한다. 창업을 통한 부의 축적을 꿈꾸지만 그 이면에 희생되는 것을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잡지사 근무 시절 만났던 작은 식당의 대표님들 전부 씀씀이가 화끈하셨다. 소위 말하는 월 1000만 원 이상 버는 분들이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모두 가게라는 공간 안에서 쓰고 계셨다. 그래서일까. 돈은 벌었지만 써볼 시간이 없으셨던 걸까. 일부 대표님들의 소비를 위한 소비, 하나의 해소와 같았다. 그들의 통 큰 소비가 내겐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부를 얻었지만 역으로 시간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창업이 낳는 아이러니다. 이럴 땐 외식업에서 만큼은 대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잘 아는 박사님이 이런 외식업 대표들을 '사장 노동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들이 '가게에 보이지 않는 족쇄로 묶인 부르주아'로 보이는 듯했다. 작은 식당의 현실이다. 창업 전 대표라는 타이틀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많은 책임감에 대해 꼭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부를 얻었지만 역으로 시간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창업이 낳는 아이러니다.
나는 잡지사 근무를 통해 창업 공부를 책상에서 시작했다. 대부분 식당 현장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브랜딩, 마케팅, 스토리텔링 등 식당이 같은 콘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가장 먼저 배웠다. 콘텐츠는 현장에서 배우는 음식, 상권, 고객 등 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다. 식당에서는 고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간판, 메뉴판, 브로슈어, 매장 내 홍보물 그리고 온라인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이 모두 콘텐츠로 볼 수 있다.
일을 하며 흥미로웠던 사실은 회사로 경영자문 또는 브랜드 기획을 요청하는 이의 대부분이 소기업 이상 규모의 외식 업체를 운영하는 분들이었다. 부진한 점포에서 요청이 올 줄 만 알았던 일반적인 내 생각과는 달랐다. 장사가 안 되는 점포의 대부분은 그 답을 레시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았고 무형의 상품(마케팅)에 지출하는데 인색했다. 사실 부진한 점포라고 해서 음식이 나빴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콘텐츠 개발 또는 홍보의 부재로 인한 것이었다. 반면에 잘 되는 가게일수록 무형의 콘텐츠 개발에 더욱 힘썼고 무형의 가치에 기꺼이 값을 지불할 줄 알았다. 대한민국 식당의 음식을은 대부분 상향 평준화 되었다. 음식의 맛과 식당의 위생은 기본이니 기본을 논하는 것은 전략이 될 수 없다. 오래된 노포는 그 식당이 지금까지 있기까지 걸어온 시간이 서사 스토리가 될것이고, 신생 유명 식당들은 평준화된 음식을 어떻게 다르고 특별해 보일수 있도록 콘텐츠를 더하는가가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장 처음 배운 대박 식당의 영업 전략이었다.
외식 창업 콘텐츠 기획 역량을 높기 위한 공부하는 TIP
세 가지만 기억하자. '관찰', '기록', '구성'
식당 벤치마킹을 할 때는 가게 입장부터 퇴장까지 고객 관점에서 시선의 이동으로 관찰한다.
사진 촬영 시에는 '간판사진-음식사진-메뉴판사진' 을 순서대로 기록한다.
찍어놓은 사진에 점포의 대표 메뉴와 콘셉트를 간판과 음식의 플레이팅(담음새) 그리고 메뉴판(또는 홍보물)에 잘 담아 내었는지 분석하여 글로 구성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벤치마킹 자료를 꾸준히 정리하면 적어도 식당을 갔을 때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의 기준이 아닌 콘텐츠로 전문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안목이 길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