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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an 31. 2023

[1월의 독서]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

내가 되고 싶은 기획자의 모습들

2023년 1월, 일요일 밤 10시마다 온라인으로 모여 책을 읽는 '읽터뷰' 모임에 참여했다.

책의 주인공, 저자를 인터뷰한다는 느낌으로 책을 깊게 읽은 뒤 문장을 수집하고 인사이트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다른 분들과 함께 책을 읽는 기분이라 정말 좋았다)


내가 읽은 책은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였다.


'김영미' 작가님께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일곱 명의 기획자들을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담아낸 책으로,

다른 기획자분께 추천받은 책이기도 하고, '읽터뷰' 주제와도 잘 어울려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읽터뷰에서 진행했던 것처럼,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과 이 문장들이 왜 좋았는지 적어보려 한다.




1. 헬로우뮤지움 김이삭 관장, 어린이 미술 전시 기획자

기획의 시작은 무엇보다 ‘이모션(감정)’이다. 어떤 아이디어나 생각을 풀어낼 때 감정이 일단 한 번 동해야 한다. 기획의 첫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낼만한 어떤 대상이 떠오르거나 눈앞에 나타났을 때 자기 언어로 거침없이 풀어내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가는 것이 기획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감정이 동한다는 것이 스스로 설득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스스로 깊이 공감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감정이 동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그 생각에 대해 깊이 공감한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쇼노트 송한샘 총괄이사, 뮤지컬 공연 기획자

송한샘은 프로젝트에 연관된 모두를 진심으로 돌봐줄 수 있는 지혜로운 매니지먼트를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공연 기획의 출발점이 ‘다른 사람의 발까지 닦아줄 자세로 섬기는 마음’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때로는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어느 한쪽의 편에 서야 하는 상황도 생기지만 중간중간 모든 과정들을 인내하고 소통하는 기획자의 기본자세, 그 진심이 전달될 때 함께하는 모든 이들도 수긍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프로젝트에 관여하는데 이 이해관계의 중심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기획자로서 근무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르다 식으로 단순하게 판단하고 쳐내기보다 의견을 한번 더 들어보고 진지하게 함께 고민했을 때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물은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거니까 섬기고 배려하는 자세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참고로 나는 이렇게 다 같이 만들어갈 때가 재밌어서 기획을 하고 싶었다.)


이에 대해 같은 읽터뷰 멤버였던 분께서 아래와 같이 함께 고민해 주셨다.


"커뮤니케이션하는 기획자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줘야겠다는 것을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결국 그 말을 반영하거나 반영하지 않거나, 인데 ‘좋은 의견 감사해요~’ 해놓고 아무런 행동이 없다면 그것이 잘 들어준 것인가? 싶기도 해요.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업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잘 들어준다는 것이, 그냥 듣고 공감만 해주면 되는 그런 정도를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어떻게 하면 잘 들어주는 걸까요?"


이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해 봤다. '잘 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방적으로 듣고 수락하거나 거절하며 끝나는 것이 아닌, 듣고 난 뒤 피드백을 하고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것 말이다.

'좋은 의견 감사해요' 하고 그 의견에 대한 질문이나 피드백을 한번 더 드리면서 의견을 하나로 맞춰나가다 보면 무시보다는 존중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더 나은 해결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한 이렇게 쌓인 존중과 신뢰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안이나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없앨 수 있다.


3. 비비정마을 소영식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 마을 기획자

김해준처럼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 역시 간혹 ‘일을 만들어서 한다’며 선후배들로부터 타박 섞인 잔소리를 듣곤 했다. 주어진 일도 많은데 새로 일을 만들고 다니니 어디 가서 피곤하다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어진 일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일은 그 과정이 훨씬 재미있다. 일의 주체는 물론이고 책임도 모두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를 맞이하는 긴장감도, 보람도 훨씬 크다.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내어 잘 이루고 싶은 마음은 자신의 업을 사랑하는 모든 기획자들의 원동력이 아닐까.

나 또한 회사에서 일이 안 그래도 많은데 계속 만들어서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공감이 갔다.

물론 회사의 상황에 맞춰서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일을 진행해야 하고, 당시에 난 그걸 고려하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그 얘기를 들으며 꽤 속상했는데 이 문장을 읽고 안도할 수 있었다. 일을 만들어내서라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것, 내 업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4. 도움과 나눔 김은영 팀장, 비영리단체 모금 기획자

새로운 일에 선뜻 뛰어든 그를 보며, 자신의 삶의 푯대가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더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삶의 유의미한 도구로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힘은 아니었을까.
비영리단체를 움직이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힘은 김은영처럼 인생의 가치관에 따라 주어진 일을 힘든 조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많은 젊은 기획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획은 일이 아닌 삶으로 나의 일을 바라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방송작가로 일했던 분께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2년에 걸쳐 펀드레이징 프로그램 스마트레이저를 개발하셨다. 읽으면서 매우 놀랐다.

그가 비영리단체의 홍보부터 거리모금 프로그램 운영, 소프트웨어 기획까지 전혀 다른 분야의 일도 거뜬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돕는 것’ 이 관심분야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며 나는 왜 기획을 시작했었나.. 하고 돌아보았다.


TMI) 내가 기획을 왜 시작했지? 내 관심분야는 뭐지?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획자라는 직업이 되게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중학생 때는 공연 기획자를 꿈꾸기도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공연을 통해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을 준 공연을 기획한 기획자가 멋있어 보였다.


그랬던 나는 학창시절 수학이 특히 재밌었고 사람들 생각을 수치로 확인하고 싶어서 통계학과를 갔다.

대학 면접 당시 내 꿈은 통계청 공무원이었고, 설문조사 하면서 불편한 점 없었냐, 어떻게 해결하고 싶냐는 질문에 앱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신기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2학년부터 피부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화장품을 찾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렸다. 그때 화해라는 어플을 알게 되었고, 그 어플을 통해 화장품 찾는 시간을 확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서비스를 통해 누군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나도 그런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당시에 나는 파이썬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개발동아리에 들어갔다. (꽤 뜬금없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사람들과 살을 붙여가며 세상에 필요한 것을 논의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재밌어서 기획자를 꿈꾸게 되었다.


돌고 돌아 기획이라는 직무를 찾은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늘 속으로 누군가를 돕거나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고, 이걸 기획으로 풀게된 것 같다.


회사에서 기계처럼 일을 하다 보면 가끔 기획이 일로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왜 기획을 하고 싶었는지 곱씹어야겠다.

 “기획”이라는 일을 그저 일이 아닌 삶으로 바라볼 때 나의 진심이 전해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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