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허진 옮김, 복복서가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까?
책의 표지가 눈길을 끕니다. 백발의 노인이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마 주인공 모리스 씨 일 듯합니다. 이 작품에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한 남자의 인생이 가득 들어있지만 놀랍게도 스토리의 전개는 5시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리스 씨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년 시절 형제를 잃고 젊은 시절 아내를 만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마음고생을 반복하며 고대하던 아이를 얻고, 목표를 가지고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그 후 아들은 본인의 꿈을 찾아 외국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부모님들처럼 말입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의 작품이지만 한국 작가가 썼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공감되는 내용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무뚝뚝한 남편이었고 아들에게는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색한 아버지였습니다. 더욱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심지어 평생 놓지 못한 응어리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모리스 씨는 아내를 먼저 먼 곳으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2년을 혼자 보낸
모리스 씨는 어느 모임에서 깨닫게 됩니다.
‘내가 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거짓을 견딜 수가 없었어. 받아들여지려면, 어딘가에 속하려면 그래야만 하지. 하지만 아들아, 중요한 건 내가 속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인데 그 사람은 거기 없었다는 거야.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소소한 잡담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설사 그런 사람이었다 해도 사실 난 새로운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때 확실히 알았다. 난 이제 네 엄마를 찾는 수 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상실을 몰라. 뼈에 달라붙고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은 긴 세월에 다져진 흙처럼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라지면…누가 억지로 뜯어간 것 같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채 빌어먹을 고급 카펫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거야. 반은 살아있고 반은 죽은 채로, 한 발을 무덤에 넣은 채로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한 남자의, 한 남편의, 한 아버지로서의 삶이 매우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같은 남자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모리스씨와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분명 남자들에게는, 남편에게는, 아버지에게는 그들만의 풀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간추려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말 안 듣고 무뚝뚝하고 철없는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말은 하고 싶어도, 표현도 잘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란 존재는 꼭 부족하고 손이 많이 가거든요. 그래도 남편들은 아내들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저도 제 아내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