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나쁜 건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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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안녕, 여기는 아침에는 춥고 여름에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힘들 정도로 더운 그런 이상한 날씨야. 이제 곧 그 뜨거운 햇빛마저 그리워질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올 것 같아서 아쉽네. 출근하려고 눈을 뜨면, 아직 너무 어두워서 얼른 서머타임이 끝나고 한 시간 뒤에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말이야.

알다시피 내가 열도 많고, 땀도 많아서 여름을 싫어하긴 하는데 그나마 독일의 여름은 한국만큼 습하지 않아서, 찜통에 있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훨씬 나은 것 같아. 물론 한국은 그런 만큼 어딜 가도 에어컨이 있는데, 여긴 그렇지 않아서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도 들고 말이야.


어제는 여자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살면서 해봤던 가장 큰 거짓말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지금껏 거짓말을 안 해온 것도 아니고, 심지어 꽤 잘하는 편인데도 딱 떠오르는 게 없더라. 그런데 이제는 몇 살 때인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 어렸을 적의 내가 떠올랐어. 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가, 아니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 기억도 나지 않아.


나는 그때 친구와 오락실을 자주 갔었어. 엄마한테 백 원, 이백 원, 많게는 오백 원도 받아서 다녔던 것 같아. 그렇게 돈을 받아서 다녔었는데, 갑자기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머니, 아버지 가게 계산대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 그것도 어머니 있을 때, 슬쩍 딴 데 보시는 사이에 아래로 스윽 들어가서 계산대를 열고 돈을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었지. 그렇게 가져간 돈으로 친구에게 의기양양, 전리품이라도 가져온 양 자랑하며 이걸로 놀자고 신나서 말했지.


그렇게 얼마간을 계속 놀았는데, 사실 지금도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날은 오백 원짜리를 잔뜩 주머니에 넣고 오락실에서 100원짜리로 바꿨어. 그렇게 몇 판 하지도 않고는 집으로 갔어. 집으로 갔는 데 분명, 가게 있어야 되는 어머니가 집에 계셨던 거야. 어머니는 원래부터 알고 계셨던 건지, 아니면 내 불룩한 주머니를 보고 이게 뭔지 확인하시려고 하신 건지. 바지 주머니에 있는 걸 다 꺼내보라고 하셨어. 꺼내니까 그때 내손으로 양 쪽 한 줌씩 두 줌이나 되는 100원짜리가 나오더라.


그때 어머니는 매를 드시거나, 엄하게 혼내시진 않았던 것 같아. 그냥 왜 그랬는지, 이게 다 어디서 난 건지 물어보셨어. 아마, 다른 곳에서 훔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하신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해. 그래도 그때 난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구나,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 것이 아니면 절대 손을 대면 안 되겠구나를 깨달았어.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쁜 일이구나라고 모르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 분명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나쁜 건지는 몰랐었던 것 같아. 그 날 깨달았지. 내가 이제까지 한 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었구나. 당연히 그 이후로는 계산대에 손대는 일은 절대 없었고, 심부름을 할 일이 있어서 돈이 남는 경우라도 10원짜리 하나까지도 다 드렸어.


분명히 나는 이 일 말고도 많은 거짓말을 했을 거고,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때로는 나쁜 거짓말도 했을 거야. 하지만 이때가 유난히 생각나는 건 아마, 나쁜 일인지 알면서 했다고 하더라도 그 나쁜 일의 크기가 얼마만큼 큰 건지 새삼 깨달았었던 때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 솔직히 말하고, 용서를 비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배우기도 했고 말이야.


만약 그때 내가 어머니께 들키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렇게 돈을 내 것처럼 가져다 썼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량 학생이 됐다거나, 여기저기서 돈을 훔치는 사람으로 자랐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안 해. 그런데, 아마 세상에 대해서, 지금보다 오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내가 이렇게 해도 안 들키네', '나쁜 일인 건 알지만 이렇게 동전 몇 푼은 부모님도 이해하실 거야' 등의 네가 지은 죄를 작게 생각하는, 오만하고 건방진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


그래서 다시 한번 그때 그 일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게 됐어. 매를 먼저 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신 어머니께도 다시 감사하고. 오늘 참, 감사한 날이네. 그럼 나중에 또 편지 쓸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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