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못 한다고 했었지, 만.

11

by q mark


안녕, 지난 금요일에는 이사 온 집에서 처음으로 집들이를 했어. 그동안 열심히 옮기고, 꾸미고, 닦아놓은 집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고, 마시니까 재미있더라. 얼마 전에 내 키 반 만한 화분 두 개를 U-Bahn, S-Bahn이라는 지하철, 전철을 타고 나가서 직접 사들고 온 보람이 있었어. 뿌듯하더라. 함께 고심해서 고른 것들, 함께 옮기고 또 위치를 선정한, 마치 함께 만들어낸 우리 작품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어.


오늘은 집들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 날 아침에 출근할 때 동료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얘긴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야기해줄 만한 이야기 같아서 말이야.


나도 그렇고 그 날 함께 이야기한 동료들도 그렇고 독일에 살고 있지만, 불행히도 아직은 독일어보다는 영어가 더 편한 것 같아. 사실 영어가 편한 것까지도 아니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유럽 여행을 하다가 보면 어딜 가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쓰여있는 건 알파벳인데도 어떻게 읽는 건지, 저기 A위에 점 두 개(Ä)는 뭐고, 저렇게 콤마 같은 게 찍힌 A는 뭔지(À) 감도 안 올 때, 새삼 영어로 된 메뉴나, 표기를 보면 반갑거든. 우리나라 말도 아닌데, 마치 모국어를 보고 듣는 듯한 느낌.

여기 독일에 살고 있고, 이제는 독일어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도 대화할 때는 영어로 말해주면 훨씬 안심이 돼. (물론, 그렇다고 영어로 대화하는 게 수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 통화할 때 상대방이 독일어로 우다다 쏘면 당황할 수밖에 없거든. 나도 그렇지만 직장 동료도 그랬나 봐. 지금은 독일어를 잘하시는데, 처음 왔을 때라 독일어를 아예 못했을 때였는데 개인적인 일로 전화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하면서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는데(아, 이 분은 영어를 정말 잘하셔) 할 줄 안다고 했대. 그래서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분명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했는데, 너무 못하더래. 당황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그걸 듣고 그래도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부럽다고 했지. 그 사람은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고, 어쨌든 대답도 할 수는 있으니까 영어를 할 수 있다고 했을 거야. 문법이 완벽하든, 완벽하지 않든 혹은 표현이 세련되거나 어렵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야.


내가 예전에, 독일로 가족과 함께 어렸을 적 이민 온 그리스 출신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독일어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할 정도로 영어도 잘했어. 나는 당연히 영어를 잘 못 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영어를 못한다고 배워야 된다고 말했지. 그런데 그 친구는 여러 번 이렇게 얘기했어.

'너 영어 잘해.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영어를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안가. 네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몇 가지 단어를 모르는 건데, 그것도 결국 다른 단어를 써서 내게 설명했고 내가 이해했잖아. 그건 영어를 못 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는 그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 말을 듣고 독일어 학원에서의 일이 생각나기도 했어. 학원 수업 중에 '여행 가이드'라는 단어를 표현하고 싶은데, 독일어로 그 표현을 몰라서 '어떤 한 남자나 여자. 한 그룹과 여행을 가요. 이야기하고 설명해요. 선생님처럼' 이렇게 짧은 독일어로 표현을 했고 그때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독일어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칭찬했지. 영어로 'Travel guide'라고 말하면 당연히 못 알아들을 사람이 없었겠지만, 외국어로서 독일어를 배울 때는 단어 하나를 알고 그냥 쓰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를 조합해서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언어는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에게 영어는 그런 단순한 '수단'이 아니었던 것 같아.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정규 교육으로만 10년 이상을 배워온 거고, 그런 내가 몇 단어로 더듬더듬 문장을 만들어서 내뱉는 걸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더라. 그래서 나는 영어를 못해요 라고 말하게 되는 거고.


하지만, 동료와 통화했던 그 사람도 그렇고, 그리스 출신 친구도 그렇고 영어를 하나의 외국어, 소통 수단으로 생각하는 그 자세가 부러웠던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않으면, 똑똑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잠재의식 속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반대로 나도 그걸 누군가를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거고, 반성했지.


물론 지금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여전히 내 영어실력을 무척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영어를 못 한다'는 말보다는 '완벽하진 않지만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이 맞겠다고 생각해.


유튜브에서 한 강의를 봤는데,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샘 리처드라는 교수님 강의였어. 동양 문화권과 서양 문화권의 학생의 특징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는데 동양 문화권 학생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고, 겸손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서양 문화권 특히 미국 동부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과대평가를 한다는 내용이었어. 강의 내용 기반에 동양 문화권, 특히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묻어있지만, 나는 이 강의에서도 이런 문화권 때문에 더더욱 한국인으로서 단순히 영어를 수단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어.


독일어 학원에서도 한국인이 많으면, 다 같은 수준의 같은 반인 데도 발표하는 데 꺼려지거든.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할 수 있어도 먼저 나서면, 너무 나선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혹시나 틀리면 멍청한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봐 두렵기도 하고 말이야.


독일도 그렇고, 서양 문화권에서는 남의 시선보다는 나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 같아. 동양 문화권에서는, 아니 적어도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내 능력 중 부족한 부분에 대해 집중하고 말이야.


결국에는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말하는 이유에는, 영어 할 줄 알아요라고 했을 때 내가 못 알아들으면 상대방이 나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내리지 못하겠다는 두려움과 더불어서,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거라면 할 줄 아는 게 아니라는 내 능력에 대한 박한 평가 때문인 것 같아. 그런 두려움과 과소평가가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길을 터줘서 자기 계발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지만, 자신감을 잃게 해서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더라.


생각보다 우리는 더 나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유독 나에게 냉정하고, 차갑게 대하면 능력적으로 성공하는 길은 열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으로 가는 길은 조금씩 닫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좀 더 사랑하고, 보듬어주자. 또 연락할게, 안녕.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나쁜 건지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