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그 유치하고 뼈아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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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어렸을 적에, 가끔 반에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친구들이 한 두 명씩 있었던 것 같아. 내가 선동해서 따돌림을 시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돌림을 막을 만큼 용기가 있거나, 그게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 결국엔 따돌림시키는 친구들이나 따돌림당하는 친구들 모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무관심했었지. 누가 만든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왕따(제일 따돌림당한다), 은따(은근히 따돌림당한다), 전따(전교생이 따돌린다) 등 학교 다닐 때 그런 친구들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졌고, 사회적인 문제로 뉴스에도 나오곤 했고 지금도 그런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 같아.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비슷한 경우는 있었고, 그때도 내가 뭘 특별히 한 건 없었어. 그저 선임일 때는 그런 후임 한번 더 챙겨줄 수밖에 없었지. 군대에서는 보통 고문관, 혹은 기수열외 등의 이름으로 그런 병사들에게 딱지를 하나 더 붙이고는 했고 공공연하게, 하지만 본인의 군생활 연장을 피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그 병사와 트러블은 일어나지 않게끔 조심했었지. 그런데, 결국 학교에서와 비슷해 보였어. 누군가는 직접 따돌렸고,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있었고, 무관심으로서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그런 '주변인' 중 하나였지.


따돌림당하는 사람들을 정말 그렇게까지 괴롭혀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초등학교 때 한 친구가 기억에 선명한데,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학업 수준이 모자랐어. 그 당시에 들었던 얘기로는, 원래는 다른 친구들처럼 똑같이 생활이 가능했는데 머리에 돌을 맞아서 다치고나서부터 정신연령이 또래에 비해 낮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냥 그게 이유였어. 나와 같지 않아서. 나보다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내가 시키면 다 하니까.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어리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닌데. 학교 복도에서, 그 아이들은 그 친구한테 바지를 벗어보라고 했다더라. 그럼 애들은 웃으니까, 그 친구는 그런 것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던지 스스럼없이 몇 번이고 애들이 하라는 대로 한 거야.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사실 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뭐하는 짓들이냐고, 그만하라고 좀'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을까 싶어. 그래서 그 친구를 떠올리면 막연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따돌림, 차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딱히 큰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아. 옷차림, 말투, 단 하나의 말실수 혹은 그 아무것도 아니어도 단순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그런 이유.

코로나가 중국에서부터 시작돼서, 전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번지며 독일에 살며 처음으로 직접적인 인종차별을 마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마트에서 나를 보고 '코로나'하고 외치고는 자기들끼리 킬킬거리며 도망가는 아이들, 버스 안에서 나와 동료가 앉으려고 할 때 괴성을 지르며 뒷자리로 피하는 정작 자신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은 한 학생, 여자 친구와 길거리를 걸어가는 데 술에 취한 채 바로 앞에서 '칭챙총' 같은 소리를 해대는 젊은 남자까지.


그런데 모든 독일인이, 혹은 모든 유럽권 사람들이 동양인에게 그렇게 인종차별을 하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한테 '코로나'라는 라벨을 붙이고 차별하길 원하는 거지. 너희 때문에 우리가 판데믹에 빠졌다고 말이야. 그 라벨이 없이도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라벨이 붙어있으니 더 쉽게 하는 것뿐이지.


본능적으로 사람은 다른 것에 경계심, 호기심, 이질감을 느낄 수 있어. 하지만 입 밖으로, 혹은 행동으로 적대감, 무시를 드러내는 사람은 그 정도의 소양밖에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정말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 옛날 '나치'를 기억하지 않고 있는 건가 싶어.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는 과연 인종차별을 하고 있지 않은 걸까? 편견 없이 정말 모두가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라. 인종차별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인보다는 이민자들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특정 몇 나라에 대해 편견이 씌워져. 인종차별을 하는 몇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인종차별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되는 거지.


한국에서는 어땠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과연 이태원에 놀러 나온 외국인들과 편견 없이 똑같이 봤을까?

그렇지 않았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보다 잘 못 사는 나라에서 돈을 벌러 왔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그들을 다르게 봤었어.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어떤 라벨이 붙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붙은 라벨을 떼어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까. 아니면 학생 때의 나처럼 방관자로 남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때가 되면 나조차도 그들에게 돌을 던지게 될까.

적어도 내 앞에 놓인 나날들에서 지금 이 유치하고, 뼈아픈 기억들이 날카롭게 손끝을 찔러 돌을 던질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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