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렇게까지 깨끗하거나, 깔끔하지는 않은 얘기를 하려고해. 뭐 그렇다고해서 더러운 글을 쓸거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조심하는게 좋으니까. 그러니까 뭔가를 먹고있거나, 먹을 예정이라면 이 글은 나중에 읽는걸 추천할게.
집이 아닌, 회사에서 혹은 까페, 백화점 등 밖에서 화장실을 가게 되었을 때 닫힌 변기 뚜껑만큼 무서운 게 또 없지. 얼마전에 나에게도 그런 시련이 주어졌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변기 뚜껑을 열었고, 아주 깨끗하고 멀쩡한 변기와 마주할 수 있었어. 참 다행이었지.
근데 새삼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고민을 해서 변기 뚜껑을 열었던 내가 잘 판단한 걸까. 만약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나는 후회할 선택을 한 나자신을 원망했을까. 그렇다면 어떤 결정을 한다는 것은 결국엔 결과에 따라서 용기일수도, 객기일수도 있는 걸까.(너도 알겠지만,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되곤하는 것 같아. 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앉아있는지 알것도 같더라.)
우선, 왜 뚜껑이 닫힌 변기를 열기가 무서울까. 과거에 변기를 열었을 때 분명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을 거고(혹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상상으로 만들어낸 간접적 경험일지라도), 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걸거야. 그래서 좋지 않은 결과를 미리 상상하게 되고, 뚜껑을 열길 주저하는 거겠지.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서 뚜껑 열길 포기해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있든지 좋지 않은 결과로 치부해버리며 자리를 뜨겠지.
화장실 얘기 주제에 너무 장황했지. 근데 변기 뚜껑을 열었고, 원치 않던 상황을 마주하지 않은 그 순간이 너무 기뻐서인지 나는 그 변기를 열어본 용기를 냈다는 게 아주 만족스러웠어. 그 당시의 상황도 잘 해결(?) 되었지만, 최근에 내게 걱정,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단을 내리는 상황이 없어서인지, 소소한 그 순간에도 칭찬해주고 싶더라고. 다시 한 번 이런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렇게 네게 글까지 쓰게 되었으니까.
(물론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도망가는 건 때론 도움이 된다는 글을 썼을 수도 있겠지만.)
화장실 얘기는 아니지만, 무서워서 피해버린 결정에는 짧든 길든 나중에 후회가 생기긴 하더라고. 어쨌든 결단을 내리면 결과가 좋으면 고마운 일이고, 좋지 않으면 잊어버리면 그만인데 결과를 알지 못하면 계속 내 상상 속에 머무르게 되니까.
앞뒤 생각치말고 저질러보고 나중에 생각하라는 무책임한 조언은 아니지만, 적어도 네가 감당할 수 있겠다 싶으면 한 번 부딪혀보는 게 낫겠다 싶어.
가령 어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러다 싸우기라도 하면 이건 어떻고, 만약에 헤어지면 저건 또 어떻게하냐는 식의 걱정으로, 그럴 바에야 만나지 않는게 낫다는 일종의 포기보다는 지금 좋고, 그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일단은 만나면서 나쁜 상황이 되지 않을 만한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혹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따위는 밀쳐두고, 오늘 지금, 이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적절히 표현할 방법을 찾는게 더 좋지 않을까.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수 백개쯤 있어도, 한 개의 꼭 해야만할 이유가 있다면 해보는 게 나은 것 같아. 그리고 길지 않은 내 인생의 경험 상, 꼭 해야겠다 싶어서 한 일들에 대해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 결정을 하지않아서 생기는 문제에 비해서 다 감당할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 얘기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종교가 없지만, 있더라도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삶은 온전히 처음이자 마지막 삶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우리,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많이 하되 후회는 조금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자.
그런 삶을 위해서는 저 문 뒤에 어떤 게 있을지 잘은 모르지만 열어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문 뒤에 내게 해를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어도 무너져버리지 않을 만한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는 걸 항상 기억하며 살자.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