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숲 같은 내 삶에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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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가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초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날이 쌀쌀해졌어. 코로나로 난리인 이 시국에도 시내에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아닌데, 가을 축제라는 이름으로 아마도 매년 크리스마스 마켓 부스에 설치했었을 초코 코팅을 한 아몬드, 크레페 상점 등 먹거리에 타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 놀이기구를 설치했더라. 난리통에서도 일상은 여전히 돌아가긴 하나 봐.


한국에 있는 친구가 차를 샀다는 소식에, 그리고 아마도 내년쯤에는 결혼을 할 것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서 같이 공부하고, 자소서 같이 쓰던 친구들이 벌써 직장에서 자리도 잡았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한다고 하니까 새삼 시간이 빨리 간다 싶더라. 그리고 마음 한 편에 인정하고 싶지만 스멀스멀 조급함이 생기기도 했어.

한국에서 회사를 그만둘 때만 해도 이렇게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내게 남는 건 차사고, 결혼하고 그냥 그런 식으로 게임에서 퀘스트 깨는 것처럼 사는 것 밖에 남지 않은 건가? 그런 인생 내가 정말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말이야.

막상 친구들이 하나씩 해나가는 걸 보면서, 나는 여기 독일에서, 친구들이 하나씩 이뤄가고 있는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데 혹시라도 내가 늦은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어.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생각은 불과 몇 분 정도 머리에 맴돌다가 날아가버렸어. 인생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게임이라면 나는 장르가 조금 다른 게임을 선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퀘스트를 받고 그 퀘스트를 깨고, 레벨업을 매일 해나가는 그런 RPG 장르가 아니라, 일도 하고, 공부도 (가끔) 하면서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조금은 느슨하지만 그래도 소소한 '동물의 숲'류의 게임 장르라고 생각해.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집을 꾸미고 낚시도 하고, 친구들과도 만나고, 그림을 그리거나 옷을 만드는 이것저것 해보는 힐링 게임류 말이야. (물론 한국에서는 게임 안에서도 빚내서 집을 사고 빚을 갚는다고는 하더라..)


그림 그리는 건 가끔, 잡념을 없애는 데 명상보다 효과가 있다.


그리고 내가 굳이 독일에서 살고자 했던 이유도,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한국보다는 독일이 그 동물의 숲 라이프 스타일이 조금 더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직 너무 먼 이야기지만, 여기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면 매달 킨더 겔트라는 육아 보조금이나, 학비가 거의 없다는 점. 그 외에도 전세라는 개념이 없기에, 월세로 살아가는 게 더 보편적이라는 것, 장바구니 물가가 한국보다 낮다는 점에서 오히려 한국보다 삶의 난이도가 조금 더 낮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한국보다 불편하고 살기 힘든 점 또한 저 장점을 넘어설 만큼 많긴 해.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서는 내가 누군가와 비교할 일이 잘 없어. 이렇게 가끔 한국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 나는 잘 살고 있나 돌아볼 때가 있기는 한데, 일상적으로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일이 잘 없더라고.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아주 가까운 관계인 가족과도 떨어져 있다 보니 내가 여기서 신경 써야 하는 삶은 내 삶뿐인 거지. 게다가 외국인으로서, 외부인으로서 이 나라에 살아가고 있다 보니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도 있어. 내가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아직 이 문화에 완전히 녹아들고, 현지인들처럼 살고 있지 않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해.(물론 로마에서는 로마법에 따라야 하듯, 이들의 예의, 문화는 따라야지) 그렇다 보니 나 자신이 조금 더 자유로워. 아주 사소하게는 여자 친구와 길거리에서 입맞춤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문화에다가 우리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애교 섞인 농담을 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하지만 독일에 한국 사람이 너무 많으니, 항상 예의주시 해야 해) 표현도 자유로워져.


게다가 사실 외국인으로서의 삶에서 외국에서 체류 허가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꽤나 큰 행복일 때도 있거든. 그런 것들이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내 삶에 대한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촌놈으로 자라온 내가 이렇게 유럽의 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건 문득문득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거든. 외국에 나와서 살리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도 없고, 게다가 유럽은 독일로 오기 전에는 여행으로도 와 본 적이 없던 곳이었으니까.


타인과 비교했을 때, 내가 한 번이라도 만족한 적이 있던가 하면 나는 없었다고 생각해.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는 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한 면을 놓고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비교를 시작한다는 건 내 삶의 99개가 그 사람보다 더 만족스럽다고 해도 그 사람보다 부족한 1개가 나를 채찍질하게 하는 것이니까.

굳이 비교를 해야 한다고 하면 과거의 나 자신보다 오늘의 나 자신이 조금 더 나아진 걸 찾아보자. 그게 행복한 내 삶에 필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교가 아닐까. 또 쓸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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