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집으로 이사를 온 지도 벌써 세 달 정도가 됐는데, 한 달 반 정도는 이것저것 사고 꾸미고 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갖춰진 것들을 잘 정리하며 살고 있어. 물론,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처음만큼 가꾸고, 치우지는 않게 되더라. 그런데 익숙해진다는 게, 길들여진다는 게 서로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그걸 아는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는거지 뭐. 이 집도 그런 우리 마음을 알거라 믿어.
집을 꾸미면서 벽도 천장도 온통 하얀색이다 보니, 집이 너무 포인트도 없는 것 같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병동에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호주에서 온 작은 야자수와 여인초 화분 하나씩 품에 안고 낑낑대면서 S-Bahn을 타고, U-Bahn을 갈아타고 또 걸어서 그렇게 집에 들였었지. 우리 둘 다 식물을 잘 키워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물을 어떻게 줘야 할지 햇빛은 어떻게 줘야 할지, 아 그리고 이름마저도 모르고 들였었지.
그나마 야자수는 영어로 적혀있는 작은 꼬리표 같은 게 달려있어서 '호주에서 왔고, 야자수구나' 알았지만 여인초는 사진을 찍어 가족 메신저 방에 사진을 올렸을 때 '여인초네'라는 말을 듣고서야 여인초인지를 알았지. 그리고 나서야 인터넷을 뒤져서 물은 자주 주면 안 되는구나, 햇빛은 자주 보여주진 않아도 되는구나, 그래서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로 유명한걸 용케 예쁜 생김새만 보고 마음에 든다고 잘 입양해왔구나 싶더라.
처음엔 신경이 많이 쓰였어. 사실 이사하고 나서 첫 식물이 아니었고 동네 꽃집에서 산 작은 꽃 화분을 이미 잘 키워내지 못한 탓에 열심히 멀리서 들여온 그 화분들은 잘 키워내고 싶었거든. 정말 우리가 물은 이렇게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지, 영양제를 꽂아줘야 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식물 잘 키우는 법에 대해 찾아보다가 오히려 너무 큰 관심으로 물을 너무 자주 줘서, 다습으로 뿌리가 썩어 죽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관심을 좀 거두기로 했어.
겉 흙의 색깔이 검은색일 때는 아직 습한 걸로 보고, 갈색으로 흙이 마를 때쯤에 물을 듬뿍 주고 가끔씩 스프레이로 잎 쪽에 물을 주는 정도로 관리를 하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잎 쪽이 조금 마르는 것 같아 걱정을 했는데 얼마 전에는 새로운 가지 같은 게 뾰족하게 자라더니 알고 보니 그게 새 잎이었고 점점 펴지고 있더라. 그러고 나서 보니, 야자수도 키가 꽤 컸더라.
가운데 반쯤 접혀 있는 새 잎이 처음엔 가지처럼 뾰족했다.
또 얼마 전에는 마트에서 멕시코 스타일의 화분에 들어있는 자그마한 나무도 한 그루 들였는데, 이름도 모르고 들인 나무가 검색해보니 커피나무였어. 우리 둘 다 커피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지. 이 친구는 햇빛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문제는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서 독일 날씨는 일주일 중 6.5일 정도가 흐린 날이었지. 그래서 햇살을 보여주는 날보다, 못 보여주는 날이 훨씬 많았어. 그런데도, 어느새 새 잎이 아주 귀엽게 고개를 내밀고 있더라.
LP판 옆에 둔 커피나무, 그리고 빼꼼 고개를 내민 새 이파리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 내가 해준 건 목이 마를 때 물을 준 것뿐이고 크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새에, 커다란 잎을 하나 더 펴낼 준비를 하고, 키를 키우고, 또 작은 새 이파리를 움티우는 게 말이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할 때에도, 조금조금씩 풀들은 자라고 있었던 거야. 흙 속의 영양분을 차곡차곡 빨아들이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보는 햇살에도 광합성을 해내고, 공기 중에 있는 수분까지도 빨아들여서 조금씩 성장해내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걸 나는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새 이파리를 보여줄 때쯤에서야 알아차린 거야.
나도 그렇고, 너도 그래. 우리가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도 매일 아주 조금씩 우리 집에 있는 저 식물들처럼 자라고 있을 거야. 다만,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또 누구도 모를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자라다보면 언젠가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너무 힘들지만 눕기보다는 책상에 앉았던, 그리고 눈을 뜨기 힘들어도 세수를 하고 출근길에 오르던 매일의 나 자신이 그 새싹도 꽃도 피운 거겠지.
오늘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의 너 자신에게서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해지 못했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마. 네 안에는 새싹이 움트기 위해서 자라나고 있을 거니까. 오늘도 힘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