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전역 후에 복학한 첫 학기였나, '철학 입문'강의를 수강했었어. 강의 내용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받은 학점이 반대로 너무나도 흥미롭지 못했던 강의였던걸로 기억해.
어쨌든 철학 입문이기에 나 같은 타 학부생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철학 강의이기에 철학과가 절반 이상이었고, 확실히 그들의 생각과 표현이 나보다 훨씬 열려있다고 할까, 거침이 없다고 느껴졌어.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내 학점이 낮았다는 건 아니었고, 그냥 내가 공부를 안 했지 뭐.)
흥미로웠던 기억과 별개로 지금은 강의 내용 중에 기억나는 내용이 거의 없는데, 하나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철학이란 어떤 학문일까요?'라는 교수님의 첫 강의에서의 질문이야. 이런저런 학생들의 대답 끝에 교수님은 본인은 철학을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 아닐까.'라는 답을 하셨어.
왜 물을 오래 놔두면 거기서 벌레가 나올까? 왜 물을 오래 끓이면 바닥에 찌꺼기 같은 게 남을까? 혹시 그렇다면 만물의 근원이 물이 아닐까? 그런데 불에 물을 부으면 꺼지던데, 그럼 불의 근원도 물일까?부터 시작해서 아직도 과학자들이 찾았고, 찾아가고 있는 만물의 근원에서부터 모든 철학적인 것의 시작은 질문이라고 하셨지.
나는 이 수업을 듣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 있는 이 문장이 내게 어떤 깨달음 같은 걸 줬다고 생각해.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 그게 철학이고, 그렇다면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나가는 데에 하나의 중요한 지표로 삼을 수 있겠다. 반면, 문제는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 답이 명쾌하게 나오는 경우가 잘 없더라.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지만, 그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글을 쓰는 걸 멈추지 않으시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정신과 의사 김혜남 선생님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내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엔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 질문이 자신을 계속 괴롭히다 보면 자살까지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렇지. 왜 삶은 계속될까. 내 삶의 이유는 뭐지. 왜 살아야만 하는 걸까 라는 질문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생기겠지. 하지만 그 이유들을 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지워 가다 보면 결국엔 그러게, 왜?라는 질문이 다시 튀어나오겠지. 그러면 마지막 답은 그러네, 살아갈 이유가 없네 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김혜남 선생님은 다시 말씀하시지.
'질문의 방향이 잘못된 거다. 삶에 있어서는 '왜'가 아닌 '어떻게'가 맞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내용이었어. 삶에 있어서, '왜 살아야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지? 어떻게 하면 내게 주어진 이 감사한 나날들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맞다고 생각했어.
누군가 내게 어차피 한국에서처럼 거기서도 회사 다니고 똑같이 일하면서 사는 건데, 왜 독일에 사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명쾌하게 '이런 이유 때문에 독일에 살고 있어'라고 답을 주기가 어렵더라. '왜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과 '왜 한국이 아니라 독일에서 살고 있어?'라는 질문의 답을 하나씩 지우고 지우다 보면 그 답의 끝에는 항상 '그냥'이라는 답이 나오더라.
그러면 상대는 '정답'을 듣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느 정도는 납득할 만한 답을 줄 수밖에 없어. 예를 들어 복지를 이야기한다거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거나. 하지만 그것도 외국인으로서의 삶에서 내게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내가 이미 알고 있지.
그런데, '왜'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가로 초점을 조금 바꿔보자면 한국에서보다 여기, 독일에서의 내 삶에 대해서 소소하든 중요한 문제든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
사소한 예를 들어보면, 내가 글을 쓰는 걸 꽤 좋아하네. 써볼까. 그런데 쓰다 보니 내가 꾸준히 쓰는 습관을 들이지는 못했네. 어떻게 하면 꾸준히 써 갈 수 있을까. 브런치에 주간으로 연재해볼까.
가령 이런 아주 사소한 생각의 흐름조차도 나는 한국에서의 다양한 이유로 영향받고 휩쓸려가는 삶에서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의 연결의 끈이 느슨하고 조금 더 여유 있는 독일에서 가능해졌다고 생각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더라. 어떤 것들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떤 취미를 가지고 살아갈까. 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까 등등...
여러 가지 내 삶에 대해서 조금 더 들여다보고 생각해보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럼 항상 즉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떻게라는 질문에서는 답을 찾아보고자 생각이든 행동이든 해볼 수 가있거든. 이게 내게는 '왜'냐는 질문의 '어떻게'라는 답이 되겠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또 누군가는 아니 '왜 굳이 그걸 독일에서 해? 한국에서 해도 되잖아'라고 말한다면 또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할 수 도 있어. 아니면 답을 해도 이해 못할 수 도 있고.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에 항상 납득할 만한 답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우리는 한낱 이 지구 상에 한 사람일 뿐이고 '언니네 이발관' 노래 제목처럼 '가장 보통의 존재'잖아.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생각, 행동에 꼭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럼 이만. 또 쓸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