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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하루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에 '잡문집'이라는 이런저런 글들을 엮어놓은 글을 읽었어. 내용 중에 1995년에 도쿄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린 사건에 관한 글도 있었어.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은 1995년 옴진리교라는 종교단체에서 일으킨 '사린'이라는 유독성 가스를 이용한 화학 테러 사건이야. 이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했고, 약 6300명이 부상을 입었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언더그라운드'라는 이 사건의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책과 옴진리교의 교도(혹은 전교도)와의 인터뷰를 다룬 '약속된 장소에서'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지.
내가 잡문집에서 읽은 글은 그가 미국 어느 잡지에서 사린 사건과 언더그라운드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에 써놨던 글이었어.(잡지에서는 다른 종류의 글을 기대했는지, 실리지는 않았다고 해.) 외국인 독자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서 썼다는 각주가 있던데, 그 덕분에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 글로 비로소 사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지.
그런데 글의 내용 중에서 내게 적잖이 충격적인 내용은 비단 사건 내용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어.
다섯 명의 범인들 모두 이공계에서 수학한 '엘리트'라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공통항이 있었다. 대부분이 당시 삼십 대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시대 이후에 등장한 '뒤늦은' 세대였다.
이 당시 삼십 대는 '시라케 세대'라고 불린다고 해. 냉정하고, 개인적이고 방어적인 데다 사고도 수평적이라고 일반적으로 간주되었다고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울 때 등장하기도 했지. '시라케'의 원형동사 시라케루는 '빛바래다, 흥이 깨져 어색해지다'라는 의미로 학생운동이 시들해진 시기에 성인이 되어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했던 세대라고 하는데 1990년대의 일본의 삼십 대와 지금 2020년의 한국의 이십 대, 삼십 대가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거든. 또, 시라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공유감'보다는 타자와의 차별성을 중시한다는 내용에도 공감했어. 전면적인 개인주의를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일본에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내용에도 공감했고 말이야.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혼인율이 낮고, 극심한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퇴사율도 높아. 간혹 어떤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끈기가 없다. 전쟁도 없고, 가난도 없는 이 좋은 세대에 태어났는데 다들 왜 그리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아니 적어도 내 생각은 달라.
경제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세대이기에, 경제는 점점 더 나아지겠지라는 희망보다는 이제 이 거품이 꺼지고 쇠퇴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서는 세대.
모두가 똑같은, 획일화된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를 수는 없는 세대. 그래서 그 어렸을 적 싸이월드에 '똑같이 생긴 건물에,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머리를 잘라야 하는 우리'를 답답해하며, 우린 모두 달라요를 외치지만 결국엔 그 모두가 싸이월드에 그 글에 좋아요를 남기고, 글을 퍼가는 다르지만 다를 수 없는 세대.
일반적인 직장인으로서의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길 바라기보다, 인터넷 방송 BJ를, 유튜버를 동경하고 매 시즌 역대 최다 지원자를 갱신하는, '쇼미 더 머니'에 나오는 래퍼들을 선망하는 그런 세대.
나는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더 비싼 차를 사야 하고, 시계를 사야 하고, 더 좋은 와인을 마셔야 하는(혹은 SNS에 그런 느낌이라도 내야만 하는). 그래서 FLEX라는 단어를, SWAG이란 단어를 미국보다 더 많이 쓰는 것 같은 그런 세대.
그게 지금 대한민국 이십 대, 삼십 대가 아닐까 싶어.
그 세대 분포도의 한 '점'을 맡고 있는 나는 우리 세대가 미울 수가 없어. 오히려 불쌍하고 안타깝지.
나도 한국에 있을 때 1년 하고 몇 개월 다닌 회사에 사표를 내서 신입사원 퇴사율 증가에 기여했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비혼 주의였으니, 낮은 혼인율에도 한 몫했던 거지.
내가 다니던 회사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여기 자동차 강국, 독일에서도 간혹 길에서 마주치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였어. 연봉은 또래에 비해 적지 않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의 특성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일도 많았어. 하지만 나는 버티지 못했고, 퇴사했어.
그 또래에 비해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나날이 높아지는 집값을 따라잡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가끔 기사에 나오는 양육비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결혼도 육아도 포기하는 게 맞겠다 싶었지. 그리고 일하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어. 도대체 이렇게 내가 밤낮없이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건 무엇을 위해서일까.
그래서, 말 그대로 '버티던' 회사를 그만뒀고, 거의 삼십 년을 한국에서만 살아오던 내가 지금은 독일에서 살아가고 있어.
당연히 나는 아직 독일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고, 외국에 사는 내 삶에 너무 만족해서 다들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로 가서 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야. 그냥 몇 발자국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더 나아가 우리 세대가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로 돌아가서, 가해자였던 다섯 명의 삼십 대, 그리고 피해자지만 그들이 옴진리교에 빠진 것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고 말하는 삼십 대, 이 세대에 대해 다시 이렇게 말하지.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들은 사회 시스템에 '수용되는' 것을 망설이고 거부하기 시작했다. ...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답은 확실하다. 사회 자체가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 전후 일본에서 이러한 근원적인 의문이 제기된 일은 드물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전 세대에게 그 대답은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풍요로워지기 위해 일한다. 우리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사회 자체가 부유해지면 그 문제들은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기본 전망이었다. ... 그런데 '사회의 경제적 발전이 그대로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실감한 최초 세대가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 세대와 너무도 비슷하다고 느껴지더라. 사회는 더없이 풍요로워졌고, 경제적 수준은 점점 나아져가지만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은 그 풍요를 느낄 수 없는 현실. 그런 현실에서 사회의 구성으로서의 내 목적은 상실되어가고, 내 개인의 삶의 이유, 목적을 찾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고,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다를 수 있는지를 모르니 그나마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에 대해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휴식시간에도 자기 계발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코딩, 외국어 등등을 찾아보게 되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이상 굶어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되었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기술의 발달로 더 넓고, 약해진 관계망으로 옆집 철수, 영희뿐만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도 끝없이 비교하게 되고 결국은 발버둥 치지 않으면 스스로 버틸 수 없는 삶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
이 글을 쓰면서도 나 자신이 답답한 건, '그렇다면 뾰족한 수가 있냐'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한다는 거야. 그래, 우린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런 세대야.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뾰족한 수'라고는 할 수도 없고, 팁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뭐하지만 그냥 내 소소한 생각은 조금 덜 생각하고, 조금 아이 같아진다면 어떨까 싶어.
나는 글도 잘 못 쓰고, 그림도 잘 못 그리고, 음악에도 소질이 정말 없지만 그래도 해보고 있어. 이게 특별히 내 이력서에 남는 일도 아닐 거고,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냥 하는 거야. 누구보다 더 나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굳이 비교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한 번 해보고, 또 하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하지 마. 굳이 재미가 없어졌는데도 '혹시나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어쩌지, 사람들한테 그렇게 얘기해놨는데 이렇게 그만둬버리면 내 이미지는 어쩌지' 하는 생각도 버려.
그래, 우린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당장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다면 내가 지금 좀 '무쓸모'인 생산성 제로인 일을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거 없잖아. 종교적인 걸 떠나서, 지금과 같은 내 인생은 단 한 번일 거니까. 먹고사는 걱정보다 그냥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도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 될 거 없는 세대이니까.
우린 잘하고 있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낸다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다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