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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Apr 25. 2021

글을 쓰고 싶은데 쓰고 싶은 글이 없는 날.

 그런 날이 있다. 글이 무척이나 쓰고 싶은데, 도저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날. 그래서 오늘은 쓰지 않고 다른 날로 미루려고 하면 영영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날. 나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이다.

 물론 어떤 날은 걷다가도 글감이 떠올라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주 짧은 시간에 원하는 글을 써 내려가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날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따금 생각나는 글감을 적어놓은 핸드폰 속 메모장을 살펴봐도, 도저히 쓰고 싶은 글감이, 아니 쓸 수 있는 글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앉아서, 이렇게라도 글을 써 내려간다. 글뿐만 아니라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뭔가를 하고는 싶은데 그 '뭔가'가 뭔지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다. 어떤 주말은 도저히 침대에서 뭉그적 거리고 싶지만은 않은, 그런 주말이 있다. 그래서 책도 읽다가, 글도 써보다가, 그림도 끄적끄적해보다가, 주말 동안 해 먹어 볼 요리 레시피도 찾아보고, 넷플릭스도 틀었다가, 그렇게 집에도 있어보고 잠깐이라도 빵이라도 하나 사러 나가기도 해 본다. 사실 그래도, 특별히 '우와, 하루 정말 잘 보냈다.' 싶지는 않다.


 심심해서일까, 아니 나는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안도'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날에 '뭐'라도 하고 나면 내가 원하던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니라고는 해도, 그래도 '뭐라도 했다, 바삐 보냈다'라는 일종의 안도감이 생긴다.


 내게 글을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도 쓰긴 썼다, 뭐라도 썼다'라는 사실은 내게 꾸준히 글 쓰는 게 어렵고, 지속하기 힘들다는 걱정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게 해 준다. 실은 이 매거진에 '잡문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건, 물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잡문집'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아야 이런저런 글을(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이 쓸게 없어서 이렇게라도 쓰고 있다는 투정 같은 글까지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특정한 글감의 한계를 정해두지 않아야만 계속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언가를 일단은 해보는 데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도, 계기도 마련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일을 그만 둘 때도 그렇게까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많은 고민 끝에 이대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절대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사직서를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선은 회사는 그만두는 게 맞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만뒀다.


 독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온 것도 특별한 목표나 계획을 가지고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떠나올 당시에 다시 다른 기업의 입사 준비를 해야 할까,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까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 당시에 독일로 떠나서 살아보는 것이 내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떠나온 것이었고 살다 보니 이 삶이 내게 더 편하게 느껴지고, 만족스러운 삶이기에 워킹홀리데이 기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 독일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태도에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계획, 목표를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건 불안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도, 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당장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살아가고자 한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계획을 잘 못 세우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도 뭐, 어떤가. 나는 오늘 글을 쓰고 싶었고, 쓰고 싶은 글감이 없었지만 이렇게 짧은 글 한편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글을 썼고 이런 내가 싫지 않다. 그거면 됐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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