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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Feb 21. 2024

오지랖

    교사에게 2월 말은 몸도 마음도 바쁜 시기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초등학교의 경우 2월 셋째주부터 이틀 정도 전 직원 출근일이 있고, 이 때 자신이 맡게 될 학년과 업무를 알게 된다. 그러고 나면 교실 이사와 정리, 업무 인수인계와 교육과정 협의로 정신이 없어진다. 학급을 배정하고 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작년에 자신이 맡았던 학급의 아이들이 어떤 반으로 갔는지 살펴보러 간다. 빼곡히 적힌 이름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어떤 학급도 쉬울 것 같지 않다. 작년 담임이 얼마나 열심히 아이들을 흩어 놓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작년에 나를 무너뜨린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자신은 책임에서 교묘하게 벗어나는 영악한 아이였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자기 기분이 좋지 않으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아이였다. 평가 시간에 시험지에 낙서만 끄적이고 있었으면서, 점수가 낮게 나오자 교사인 내가 앞에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평가지를 찢어버린 아이였다. 생활 지도를 하면서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엄격하게 다그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지만 그 아이의 문제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는 보란듯이 규칙을 어기고 내 말을 비웃고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임용 고시 전 날에도 숙면을 취했던 나에게 불면증이 생겼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내일은 또 어떤 사고를 칠까'하는 걱정에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너덜너덜한 상태로 꾸역꾸역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하고 회의감이 들었다. 결국 정신과 진료를 받고, 병가를 내고, 병휴직을 내게 됐다. 


    학급 편성표를 보고 우리 반 아이들도 신경 쓰였지만, 누구보다 걔가 신경 쓰였다. 정확히는 걔를 맡게 될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이 된 아이들의 설명을 대충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6학년 선생님들 자리로 갔다. 

"아~ ㅇㅇㅇ은 주의 집중이 잘 안 돼요. 좀 산만한 편이에요."

"ㅇㅇ이는 모범적이에요. 선생님을 되게 잘 도와줘요."

6개월도 보지 못했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들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었다. 6학년 담임 선생님들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짐을 느꼈지만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이니 잘 하실거라 믿으며 자리를 떠났다. 


    다음은 신규 선생님의 차례였다. 편성표를 하나 하나 짚어보다 걔 이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6학년 담임 넷 중 셋이 남자 선생님인데, 걔는 하필이면 갓 졸업한 신규 여자 선생님의 학급에 있었다.

"아... xxx가 여기 있었네요."

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꺼내자 신규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작년에 겪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복잡해지자 말도 횡설수설하게 됐다.

"아, 왜 하필이면 얘가 선생님한테 갔지. 얘가... 뭐라고 해야 되지. 되게 영악해요. 애들을 좀... 뒤에서 조종하고, 수업도 방해하고. 제가 사실 얘 때문에 병가도 냈는데, 지도해본 바로는 칭찬해주는게 나은 것 같아요. 무조건 칭찬. 내 편으로 만들기. 아무튼... 힘드실텐데. 힘내세요."

영양가 있는 말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지만 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며 편성표에 메모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날 집에 가서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SNS에도 글을 썼다. 오랜만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출근일 둘째 날, 입학식 준비를 위해 강당으로 가는 길에 우연찮게 신규 선생님을 만났다. 평소 같으면 인사만 하고 동학년과 이야기를 했을텐데 왠지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다. 강당을 가는 길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제 선생님이 xxx 맡은 거 보고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아... 하하. 선생님, 어제 말씀하신 '내 편으로 만든다'는게 어떤 의미예요?"

"뭐... 학급 회장 같은거 시켜 주고, 1인 1역으로 선생님 도우미 같은거 시키고요. 그런거요. 선생님이 확 잡을 수 있는 스타일이시면 괜찮은데 아니면 그렇게 하시는게 제일 나을거예요."

"근데 제가 담임을 안 해봐서 지도 스타일이라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기간제 안 하셨어요?"

"아, 저 이번에 졸업을 해서...."

"아, 맞다. 3월 발령이구나. 내가 깜빡했네요."

휴직을 해서 몰랐는데 작년 동학년의 말을 들어보니 기존 선생님 중 6학년을 지원한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다. 학년이 끝날 때까지 계속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첫 담임인데 6학년. 그것도 비선호 학생들을 맡게 되다니... 아무 것도 모르는 신규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상처를 겪을지 걱정됐다.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신규가 거의 오지 않는 인기 학교였다. 워낙 한 분야에서 전문가인 선생님이 많았고, 그 선생님들이 7년, 8년씩 초빙으로 머무는 학교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신규 발령을 받았을 때 주위 선생님들은 복도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하라고 말했다. 그 때는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시기'여서 정작 거의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던데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오지랖이지'라는 삐딱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제야 선생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년, 30년차 경력의 선생님들에게는 그 때의 내가 얼마나 햇병아리처럼 보였을까. 신규 선생님의 앳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자꾸 그 때의 내가 떠올랐다. 교실 붕괴를 겪고, 주말에 학생 보호자에게 장문의 문자를 받았던 그 해. 나는 그 교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동학년에게도, 관리자에게도 나의 어려움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맡은 학생과 보호자는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사소한 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은 나의 지도 부족으로 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혼자 견뎠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그 모든건 운이라는 걸. 한 해를 평온하게 보내고, 마음이 맞는 학생과 보호자를 만나는 것은 나의 노력과 상관 없는 순전한 운이라는 것을 말이다. 학급에 있는 학생이나 보호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 동학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관리자에게 말한다. 학생이나 보호자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도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신규 선생님은 내가 겪었던 아픔을 똑같이 겪지 않았으면 한다.


"어려운 일 있으면, 저 4학년 2반이니까. 연락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릴게요."

도움을 준다는 것도 참 주제 넘은 말이고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배 교사들이 그랬듯 오지랖을 부렸다. 부디 올 해는 내가 오지랖 부릴 일이 많아지기를. 나로 인해서 신규 선생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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