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첫 해는 신규라서 학교에 적응하느라, 다음 해는 팬데믹 때문에 허둥지둥했다. 그러다 2021년,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서 나도 학생을 이끌어 갈 방향 즉, 교육 철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육 철학이라는 말을 쓰니 왠지 거창한 것 같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1년 동안 우리 반에서 이것만은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교사의 바람이다. 학급을 운영하고 시행착오를 몇 번 겪으며 나의 교육 철학은 몇 번 수정되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실수하는 교실'이다.
3월 한 달은 교사가 가장 허세를 부리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시기다. 나는 처음 본 아이들 앞에서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곤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과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학기가 진행되면서 자신과 친구의 실수에 조금 너그러워진다. 어느새 친구에게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고 말하는 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말의 힘이란 이런거구나 싶어 흐뭇해진다.
올 해의 학급 안내판에 '차별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실수하는 교실'이라는 문구를 적어 넣으며 문득 내가 최근에 했던 실수는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크고 작은 실수와 그 때 느꼈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며 생각에 잠긴다.
가장 최근의 실수는 불과 이틀 전에 일어났다. 이번 주는 새 학기 준비 기간이라 계속 학교로 출근해야 했다. 월요일에 교실을 청소하다보니 부족한 준비물이 있었다. 작년까지는 20명의 학생을 가르쳤기에 5개의 모둠 바구니를 사용했는데, 올 해 학생이 25명으로 늘면서 모둠 바구니가 1개 더 필요해졌다. 교사 전용 쇼핑몰인 I몰에서 모둠 바구니를 장바구니에 담은 후,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주문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어제 장바구니에 담아 둔 제품을 주문하려고 I몰에 접속하자마자 뜻밖의 글자가 나를 반겼다.
'09:00~13:00까지 홈페이지 점검 중입니다. 시간 내에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화면에 적힌 글자를 보자마자 '아...'하는 탄식이 나오며 머리가 멍해졌다. 오늘 오전에 주문해야 목요일 퇴근 시간 전까지 물건이 올텐데.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무엇보다 장바구니에 담아 둔 제품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게 문제였다. 검색해보니 같은 브랜드의 비슷한 제품이 3-4개 정도 나왔고, 기억을 더듬어 다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했다. 오후에 다시 들어가보니 I몰의 점검은 15시까지 연장되어 있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제, 상품이 발송되었다는 카톡을 받고 쇼핑몰 제품 구매 내역을 본 나는 다시 한 번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교실에 있는 5개의 모둠 바구니는 모두 흰 색이고, 나는 분명 흰 색을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주문서 색상 칸에는 선명하게 'Yellow'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앞의 실수는 나 혼자 실수한걸 알고 한숨 한 번 쉬면 될 일이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할까. 사람들의 이목을 한 눈에 집중시켜 문자 그대로 '얼굴을 붉힌' 실수도 있었다. 1월 말, 오랫동안 염원했던 문화센터 자유 수영에 등록하게 된 2월 1일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2월 1일 아침, 나는 새벽처럼 옷을 입고 준비물을 챙겨 문화 센터로 향했다.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도 내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기에 수영장은 미지의 장소였다. 바코드를 찍고 쭈뼛쭈뼛 탈의실로 들어가니 목욕탕의 습한 냄새가 훅 하고 끼쳤다. 락커룸을 열고 뚝딱거리며 옷을 벗은 후 샤워실로 들어섰다. 수영복은 어디서 입어야하고, 세면 도구는 어디에 두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어서 주변 눈치를 보며 가까스로 수영복 입기에 성공. 기력의 절반은 쓴듯한 느낌을 받으며 터덜터덜 수영장으로 들어섰다.
수영장에는 5개의 레인이 있었다. 각각의 레인 앞에는 '초급, 걷기', '연수A', '연수B'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레인 주변에는 안전 요원들이 있었지만 어수선하게 레인 주위를 서성이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색하게 팔을 쓸어내리며 일단 레인을 관찰해보기로 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레인에서는 연령대가 높아보이는 회원들이 걷기 운동을 하는 중이었고, 그 외 4개의 레인에서는 한 명씩 릴레이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팻말의 '연수A', '연수B', '중급', '고급'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 나름대로 관찰을 해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가장 왼쪽은 걷는 사람들을 위한 레인 같고, 나머지는 그냥 자유롭게 수영하는 레인인가봐. 연수, 중급은 수영 수업할 때 붙여놓은 팻말을 안 뗀거 아닐까? 그래도 중급이나 고급은 무서우니까 연수A 레인으로 슬쩍 들어가보자!'
왠지 조금 자신감이 생긴 나는 기세 좋게 연수A 레인으로 들어갔고, 앞 사람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뒤따라 무작정 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형 호흡도 배워본 적 없는 수영 왕초보였고, 레인 중간쯤에서 숨이 막혀 물 위로 올라와 잠시 숨을 골랐다. 2초 정도 되는 짧은 휴식 후 물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호각 소리를 듣고 나는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안전 요원이 호각을 불며 "위험합니다. 나오세요!"라고 연신 소리치고 있었다. 수영장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심 조심 레인 옆에 있는 줄을 잡고 힘껏 발을 움직이며 레인 밖으로 나갔다. '초급, 걷기' 를 제외한 4개의 레인은 25m를 왕복할 수 있는 숙련자를 위한 레인이라는 안전 요원의 설명을 들었다. 나는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초급, 걷기' 레인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실수해도 괜찮다'를 가르치며 꼭 함께 덧붙이는 말이 있다. 그것은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고, 그것이 실수라는 것을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멋진 삶의 자세라고. 실수하는 것은 때로 죽을만큼 부끄럽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만큼 허망해지기도 하지만 반드시 도움이 된다. 내가 두 개의 실수에서 '물건을 살 때 주문서를 한 번 더 살펴보기'와 '모르는 것은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를 배운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