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와 창작물은 분리할 수 있는가?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사건 고발 이후 하나의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낸 '미투' 운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당 운동이 대두된 이후 권력에 의한 수많은 성폭행 사건이 대두되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권위자인 경우가 많았기에 쏟아지는 폭로를 보며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분리할 수 있는가. 꽤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했던 주제지만 여전히 명료하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창작자와 창작물은 완전히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의견도, 분리할 수 없다는 의견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얼마 전 지인과의 만남에서 이 주제로 이야기했을 때도 나는 '어느 정도는 분리해서 볼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그 때도 마음 한 켠에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지금 내 생각이 어느 쪽이냐고 하면 후자 쪽에 힘이 실린다. 역시 창작자와 창작물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윤리와 개인의 윤리적 기준에 대한 문제다.
나는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리고 2012년, 슈퍼스타K의 4번째 시리즈를 보며 '정준영'을 응원했다. 로이킴과 정준영이 공연했던 '먼지가 되어'를 정말 수백 번은 들었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의 데뷔 앨범까지 스트리밍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2019년에 '버닝썬' 사건이 터지고, 그가 입에 담기도 힘든 참혹한 성범죄 가해자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2008년에서 2010년까지는 2세대 아이돌의 전성기였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떠올랐다 지기를 반복했던 시기, 안정적인 실력으로 인기를 얻었던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있었다. 그룹의 대단한 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앨범의 수록곡까지 따라 부를 정도로 그들의 음악은 좋아했다. 그 음악을 만든 것은 그룹의 래퍼였던 '용준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지, 하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감탄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19년, 그가 버닝썬의 가해자인 정준영으로부터 불법촬영물을 수시로 건네받은 성범죄 가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는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윤리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상대적이다. 현대 사회의 우리가 볼 때야 중세의 노예 제도나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이 이상하고 불쾌한 것이지만 당시의 가치관으로서는 당연했을 것이다. 물론 당연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체가 어느 시대의 어떤 계급에 있는 사람이느냐에 따라 창작자와 창작물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작자와 창작물을 동일시하는 것이 하나의 오류라는 측면도 있다. 일본의 유명한 창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이토 준지'의 작품과 그의 삶을 비교한 밈이 전형적이다. 비윤리적인 가치관을 지닌ㅡ이 둘의 경우 어느 쪽도 비윤리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는 하기 어렵지만ㅡ창작자도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며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창작물을 소비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과 책임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되는 것 같다. 삶에 대한 희망을 모두 포기한 사람이 성범죄자의 음악을 듣고 힘을 얻어 다시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다면 어떨까. 그래서 그 사람의 팬이 되었다면? 머리 아픈 일이다.
인간은 무단 횡단을 하면서도 쓰레기를 줍는 존재다. 세상에 8억의 사람들이 있다면 8억 개의 가치관과 윤리관이 있기에 누군가의 행동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는 누군가를 해치고 파괴하는 행동을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자와 창작물을 분리하는 기준 자체가 자잘하다. 보편적인 윤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창작자와 창작물을 분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분리하고 싶다. 현대가 자본주의 사회인 것도 이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성범죄자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거나 그의 통장에 소득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몸서리쳐진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주류인 것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기를 원한다.
'혐오의 시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사랑의 시대'였던 적은 없었다. 교묘하게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짓누르고 그 위를 밟은 강자들의 혐오와 권력이 만든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다. 그렇기에 더더욱 창작자의 삶과 창작자의 윤리는 중요하고 창작물이 창작자와 분리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지지부진하지만 천천히라도 평등과 사랑의 시대가 올 수 있도록, 진정으로 '사랑이 이기는' 시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준영과 용준형과 승리가 음악을 낼 수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