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하루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나는 단언코 '집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때때로 아이들의 생각이 필터링 없이 입으로 나올 때가 있다. 등교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라고 말하며 대화에 동참하고 싶은 기분이다.
어릴 때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시골로, 주택에서 아파트로, 또 다시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어렴풋하지만 기억나는 것만해도 예닐곱 번이니 더 많은 집을 거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집에서 2-3년, 길어야 4-5년 살았다보니 이삿짐을 싸는게 일상이었다. 집에는 언제나 큼직한 박스들이 쌓여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짐 박스가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다. 머리가 크지 않아 이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지만, 내성적인 나에게는 기껏 친해진 친구와 익숙한 학교를 떠나야한다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나는 내가 평생 집순이라고 자부했지만 생각해보면 집에 대한 애착이 크진 않았던 것 같다.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추억도 많지 않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집에 대한 기억은 썩 유쾌하지 않다. 원래도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성격인데, 집이라는 공간이 안정되지 않다보니 몸도 마음도 항상 붕 떠있었다. 심지어 나는 형제가 둘이나 있었다. 3살 이후로 '내 방'이라는 것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3살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항상 방 하나를 같이 썼고, 남동생이 태어나자 셋이서 침실을 같이 써야 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었다. 물리적 공간인 집(house)이 아닌 관념적 개념으로서의 집(home)에.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짜증이 많았다. 집 밖에서든 집 안에서든 가슴이 답답해 체할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꼈다. 본가에 살 때 나는 방 청소를 하지 않아 항상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다. 침대 발치에는 늘 외출했을 때 입었던 옷들이 뭉쳐 있었고, 방바닥에는 머리카락과 과자 부스러기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책상에는 책과 사무용품들이 테트리스하듯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항상 날이 서 있고, 불안하고, 우울한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더러운 방에 누워 잠만 잤다. 살다보면 살아진다. 20여 년을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왔다.
그러니 20대 후반, 결혼하고 처음으로 진짜 '내 집'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집이라는 장소는 얼마나 쾌적하고 편안한지. 편안하게 잠들고 일어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방해받지 않는 내 공간이 생겼다.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이 집이라는 곳에 고정되었다는 감각을 느꼈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욕실과 부엌 싱크대에 있는 물때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외출했을 때 입은 옷은 옷걸이에 걸기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집이 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깨끗하게 관리하고 싶어졌다. 집에 대한 애착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깔끔한 사람인 것을 알고 놀랐다. 청소가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 일인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진정한 휴식을 취하게 되자 예전만큼 불쑥 불쑥 짜증이 나거나 우울해지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게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그 아이들이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가 보인다. 가끔씩 나와 비슷하게, 집에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진다. 보통 그런 아이들은 어릴 때의 나처럼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예민한 경우가 많은데, 실수를 했을 때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 다독여주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지금의 네 환경이 좋지 않고, 너의 우울한 감정이 집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나처럼 자신의 집을 갖고 진정한 자신을 찾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당신은 집순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감을 갖고 '당연하죠!'라고 대답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