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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Feb 06. 2024

에세이와 친해지기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모르는 책들의 미로에서 헤매는 것이 그렇게도 즐거웠다. 하루에 200 페이지 가량 되는 글을 1권씩 읽었다. 책의 주인공이 되어 세계를 모험하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책을 닫는 순간, 낯선 현실에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곤 했다.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매일 일기장을 돌려 받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선생님이 내 글에 어떤 댓글을 달아주셨을까. 두근두근하며 일기장을 펼쳐보곤 했다. 그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이가 꽤 많으셨는데도 일기장에 매일 한 두 줄 정도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내 글의 첫 독자가 되어주셨던 셈이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신규 교사셨는데,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살펴주셨던 분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선생님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혹시 여름 방학 숙제로 제출한 시, 모두 이한이가 직접 쓴건가요?"

"네, 그런데요..."

"이한이가 시를 너무 잘 써서 깜짝 놀랐어요. 표현이 아주 섬세해요. 5학년이 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입니다."

나는 학교에서 시 쓰는 방법을 배운 이후로 집에서 가끔 몇 가지 시를 창작했다. 그리고 그 창작한 시 몇 편을 엮어 방학 숙제로 제출한 참이었다. 선생님은 내 시를 꼼꼼하게 보고 글 솜씨를 칭찬하기 위해 부모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엄마는 선생님께서 너의 글을 칭찬했다며 기뻐했고 나도 뜻밖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선생님의 그 전화 덕분에 나는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중, 고등학생 때는 백일장에서 가끔 상을 받으며 간간히 글을 썼다. 고등학생 때는 한창 일본 소설에 빠져서 흥미로운 세계관 창작에 열을 올렸다. 당시에는 길을 가다 본 돌멩이 하나로도 설정 하나를 짤 수 있을 정도로 상상력도 창조 의욕도 불타올랐다. 동양 판타지, 정통 판타지, SF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에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어쩐지 글을 쓰면 쓸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그 때는 '글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글을 빨리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기에 글을 쓰면서도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목적이 없었다. 즐겨 읽던 일본 소설을 모방한 어색한 번역체, 인물에 대한 납작한 설정, '기'와 '결'만 있고 '승-전'이 빠져 있는 스토리. 당시 썼던 소설은 여전히 프롤로그, 1화에서 멈춘 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왠지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다'라는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에세이를 쓰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에세이 코너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다. '에세이라는 결국 이야기가 있는 유명한 사람이나 많은 사람이 쓰는거지'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하고, 글은 쓰고 싶은데 본격적인 글을 쓰는 것은 왠지 두려워서 SNS와 블로그에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참 글을 보더니,

"에세이를 써 보는건 어때? 잘 쓸 것 같은데."

라고 말해주었다. 한 번도 에세이를 써보자고 마음 먹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읽어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거기에 있었다. 


    그 때부터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 속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긴 여운을 주는 글도 있지만 머리를 비우고 간식처럼 꺼내 읽을만한 글도 있다. 나는 그런 가볍고 소소하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을만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써본다. 가볍고 발랄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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