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차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관광지 대부분을 다녀와서 그런가. 아직 테이트 모던, 켄싱턴 궁전, 스카이 가든, 그리니치 천문대를 안 다녀왔는데 꼭 가야겠다는 생각 혹은 열정도 없었다. 유럽에 온 후 계속 7시만 되면 자동으로 기상하는 덕에 몸이 많이 지쳐있었다. 더 자려고 해도 한두 시간, 깊게 잠에 들려해도 잠이 오지 않으니 피로가 쌓이고 그 피로가 여행에 대한 열정도 막아버린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한 군데라도 다녀오자는 마음에 씻고 호스텔에서 나섰다.
일단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캠든 타운 역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햄버거랑 콜라 시키면 당연히 13파운드 정도는 될 것 같다는 나의 예상과 달리 10파운드 안 하는 저렴한 가게였다. 런던 중심부는 관광지라 비싸지만, 이곳은 로컬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이렇게 저렴한가 싶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뱃속으로 집어넣고 튜브를 타고 런던 브리지 역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버로우 마켓. 그래도 영국에 왔는데 영국 시장은 한 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에 선택한 런던 여행의 마지막 스팟. 사람들이 무수히도 많았다. 다른 관광지에 가면 모두가 관광객 같아 보였는데 이곳은 관광객 같아 보이는 사람 반, 로컬처럼 보이는 사람들 반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려하는데 배터리와 SD카드를 숙소에 두고 왔다는 것이 생각났다. 카메라 사용도 못하면서 난 카메라와 렌즈 3개를 모두 다 들고 온 것. 이렇게 더운 날 무겁게 바보 같은 짓을 해버린 내가 웃겨서 계속 웃었다.
마지막 날이니 평소보다 돈을 좀 더 썼다. 에스프레소도 마시고 좋아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두 수 푼이나 먹었다. 어찌나 달콤하던지. 한국에서 먹는 아이스크림과 솔직히 별로 다르지도 않고 오히려 더 비싸지만, 여행을 하며 먹는 것이라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영국에 왔으니 피시 앤 칩스는 한 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가 너무 부르지만, 피시 앤 칩스와 느끼함을 잡아줄 영국 맥주를 하나 시켜서 모르는 사람들과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는데 역시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솔직히 배가 고파도 피시 앤 칩스는 안 먹을 것 같다.
마켓 구경을 마치고 호스텔에서 내 모든 짐을 챙겨 나온 후 파리로 넘어가기 위해 세인트 판크라스 역으로 왔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킹스 크로스 역에 있는 해리포터 스토어에 방문했다. 그 유명한 플랫폼 앞에는 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50명 이상 줄을 서고 있었다. 난 줄을 설 시간도 없어지만, 시간이 있더라도 저 사진은 안 찍었을 것 같다. 해리포터 스토어에 들어가 보니 온갖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지팡이, 목도리, 스카프 정말 엄청나게 많은 종류들이 있었는데 하나 같이 다 비쌌다. 근데 너무 예쁜 것들이 많으니 사람들은 자꾸 지갑을 연다. 나도 지갑을 열 뻔했으나 지팡이 하나에 5만 원이 넘으니 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음엔 지팡이 꼭 사야지!
이제 진짜 런던과 작별. 유로스타 타고 파리로. 가는 동안 기차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져주어서 유튜브를 보며 심심하지 않게 파리로 이동할 수 있었다. 런던 파리가 무슨 이리도 금방인지. 2시간 20분 만에 파리에 온 나는 기차에 내리자마자 드디어 파리다! 라며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파리 북역에서 호텔까지 걸어서 10분 체크인하고 당장 거리로 나왔다. 불금이라 그런지 파리 거리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소매치기 조심하자는 마음에 조심히 그리고 긴장하면서 파리를 둘러보았다. 센강엔 한강 마냥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담배 혹은 마약을 하고 있었다. 진짜 파리에 왔다. 나의 새로운 여행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하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