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 사랑은 타이밍

꿈 VS 사랑

by 여행자 빅토르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내가 승희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보단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게 운명이고 인연인 거다." - 영화 '너의 결혼식' 中


그녀와 연락을 끊은 후, 일주일 동안은 매일 그녀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들어가 보았다. 서로 좋게 이야기하며 끝냈기에 언팔은 하지 않았다. 순간순간 그녀가 계속 생각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가 보내던 "Good Moring"과 "Buenos Dias"가 없었고, 점심시간 무렵 종종 보내던 "Have a good lunch time"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보고 싶고, 손끝에 닿던 그녀의 피부가 자꾸 생각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그리움과 공허함은 조금씩 옅어졌다. 바쁜 일상이 마음의 빈자리르 하나씩 메워갔고, 그렇게 그녀는 천천히 내 하루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감정을 정리하는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과는 늘 타이밍이 맞지 않을까.

사랑은 결국 타이밍이었다. 영화 <너의 결혼식> 속 대사처럼 얼마나 적절한 순간에 서로에게 등장하느냐가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서로에게 등장한 타이밍은 하필이면 나의 여행이 시작되기 불과 3개월 전이었다. 서로의 템포가 달랐고, 결국 그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만약 우리가 올해 7월이 아닌 3월에 만났더라면, 아마 나는 여행을 미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매 순간마다 진심을 다해 그녀를 좋아했기 때문에 4개월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더라면, 우리 사이의 결말은 달라졌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지금도 종종 들곤 한다.


사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갓 취업을 하고 두 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스웨덴에서 온 S라는 여자를 만났다. S도 M처럼. 처음 본 순간 마음이 갔다. S는 어머니가 터키, 아버지가 스웨덴인이라 백인의 이목구비에 아랍인의 눈매를 지녔다. 우리는 홍대의 언어 교환 모임에서 처음 마주쳤다. 첫눈에 서로가 마음에 든 우리는 그날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S와도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S는 강남의 한 피부과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의사였다. 여름휴가로 한 달 동안 스웨덴으로 돌아간 S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내게 할 말이 있다며 전화를 걸었다.

"스웨덴에 있는 좋은 피부과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 한국에서 받는 연봉보다 세 배나 더 높아." S의 나이는 나보다 3살 더 많은 97년생이었다. 여전히 어린 나이,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나를 선택하기에 나는 갓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스물두 살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능력도 없었다. 22살 남자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이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돈과 능력이 있어야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그렇게 S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많이 좋아했고, 무엇보다 서로가 닮은 점이 많았다. S도 나처럼 표현이 많은 여자였다. 애교도 많았고, "사랑해" , "좋아해" 같은 말을 자주 하며 늘 예쁜 말로 본인의 감정을 내게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S가 휴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함께 싱가포르 여행을 가려고 계획했었다.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잠원한강공원에서 매주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는 상상도 했다. 그녀의 무릎에 누워 입을 맞추는 그런 소소한 행복을 꿈꿨다. 하지만, 그 모든 상상은 그저 상상으로만 남은 채 나의 스물두 살 추억에 묻혀있다. 지금도 문득 S를 떠올리면 울컥한다. 나와의 관계를 정리한 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내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을 때, 나도 많이 울었다. 당장이라도 스웨덴으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다시 한번 다짐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는 일을 두 번 다시 만들지 말자고.


그래서 스물두 살 가을부터 부업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스물세 살 가을부터는 재테크를 시작했다. 돈만 좇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돈을 벌 수 있는 일, 또는 그 기반이 되어줄 일에 시간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미 두 번이나 어긋난 타이밍을 겪었지만,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는 같은 이유로 사랑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나는 이제 사랑이 두렵지 않다. 상처받을 용기가 생겼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사랑이 오히려 기다려진다.


프랑스인 작가 Marcel Sauvage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을 다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는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여름, 내게 찾아온 그녀와의 시간 속에서 나는 분명 성장했다. 후회가 남지 않은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좋아했고, 그 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앞으로 또다시 내 사랑의 타이밍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또다시 슬픔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20대를 뒤돌아 보는 나이가 되었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랑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