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리데이의 외침
엘라 피츠 제럴드, 사라 본과 함께 20세기를 장식한 재즈 싱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빌리 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재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빌리의 이름과 모습은 물론, 어쩌면 빌리의 음악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Misty나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 같이 누구나 듣자마자 "아, 이 노래!" 하는 음악은 없다. 굳이 뽑자면 Gloomy sunday나 I'm a fool to want you 정도를 뽑을 수 있겠지만 위의 두 곡만큼 대중매체에서 자주 노출이 되는 음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홀리데이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행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성냥처럼 한순간 화륵, 이내 잊혀지기도 하며 때로는 화륵, 하지만 은은하게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처럼 오래 남아있기도 한다. 나에게 빌리의 음악은 성냥 같았다. 한순간 화륵, 사람들의 귀를 홀리고는 이내 잊혀졌다. 하지만 빌리의 몸짓과 행동, 의상은 가로등처럼 오랜 시간 우리의 곁에 남아 있다. TV와 같은 영상매체에서 종종 화려한 장식과 드레스, 긴 손장갑을 낀 채 품위 있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많은 뮤지션들이 빌리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비록 빌리의 화려한 장식과 드레스가 무대에서만이라도 고통스러웠던 삶을 내려놓기 위함이었을지라도,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빌리의 긴 손장갑이 주사자국을 가리기 위함이었을지라도, 많은 뮤지션들이 닮고 싶어 했던 빌리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사실 알콜과 마약으로 인해 망가진 목소리였을지라도, 빌리의 모습은 지금 유행을 지나 재즈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3대 재즈싱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빌리 홀리데이, 사라 본, 엘라 피츠제럴드를 떠올린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교로, 사라 본은 풍부한 음색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빌리 홀리데이는 우울한 음색과 곡의 해석에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재즈싱어로서 평가받는다. 세명 모두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빌리를 최고의 싱어로 평가하는 이유는 빌리의 음악 안엔 삶의 애환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난 생각한다. 아니, 사실 애환(哀歡)에서 환(歡)은 빼는 게 맞겠다. 빌리의 일생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44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녀가 드디어 진정한 평화를 얻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빌리의 일생을 단지 글로만 접할 수밖에 없는 내가, 감히 그녀의 일생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로지 글로만 접했을 뿐인 빌리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고 비참했다.
빌리의 본명은 엘레노어 페이건으로 인종차별이 난무하던 1900년대 초 10대의 부모 사이에서 잉태되었다. 어머니의 나이는 당시 14살, 한 생명을 책임지기엔 터무니없이 어린 나이였다. 일찌감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소녀는 외로움과 학대 속에서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열 살이 되던 해, 엘레노어 페이건은 돈을 벌기 위하여 다른 집으로 일을 나가야만 했다. 그녀는 일을 하며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시 윤리의식이 결여된 미국 사회는 이 어린 소녀에게 짧은 자유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엘레노어 페이건이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열 살이었으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을 꼬셨다는 이유로 감화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몸과 마음이 상처로 얼룩진 상태로 감화원에서 나온 엘레노어 페이건은 얼마 되지 않아 흑인 남성에게 또다시 성폭행을 당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 뉴욕 사창가의 창부로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매춘행위로 고발되어 또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도저히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처절한 하루를 살던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어준 건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뿐이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강타했던 경제대공황의 여파가 극에 치달았던 1933년, 창부 생활을 청산하고 백인의 집에서 하녀 생활을 하던 엘레노어 페이건 또한 대공황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방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에 내쫓길 위기에 처한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뉴욕 할렘의 133번가에 있는 '포즈와 제리즈'라는 클럽에 댄서로 취직하기 위하여 오디션을 보러 간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해본일이라곤 가정집에서 잡일을 해본 일 밖에 없던 그녀가 오디션에 붙을 리는 만무했고, 다급해진 그녀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구걸을 하지만 클럽의 주인은 매몰차게 내쫓으려 할 뿐이었다. 이를 보던 클럽의 피아니스트는 그녀를 불쌍히 여겨 노래라도 한번 불러보겠냐고 제안을 했고 당장 45달러가 없어 어머니와 함께 길거리에 내쫓길 위기에 처한 그녀는 피아니스트에게 보스웰 시스터즈의 "Trav'lin' All Alone"을 주문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자문을 통해 나온 윌리엄 더프티의 저서 "Lady sings the blues(1956)"에 따르면 빌리 홀리데이는 당시를 회상하며 "홀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만약 누군가 핀이라도 떨어트렸다면 그 소리는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같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1]
[원문] "The whole joint quieted down. if someone had dropped a pin, it would have sounded like a bomb"
시끌벅적하던 클럽은 어느새 엘레노어 페이건의 음색에 매료되었고, 처절한 삶을 살아왔던 엘레노어 페이건으로서의 삶을 벗어던지고 아버지의 성 홀리데이와 당시 그녀가 좋아했던 배우 빌리 도브의 빌리를 따서 빌리 홀리데이라는 예명으로 재즈싱어로서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에 베니 굿맨,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 레스터 영, 아티 쇼 등 당시 재즈계를 주름잡던 명 연주자들과 함께 활동을 하며 음악가로서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비대해졌지만, 당시 미국 전역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차별의 벽은 허물지 못했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였으며 팀원과 식사조차 같이 할 수 없었고, 공연이 끝난 후 휴식하려고 들른 호텔에 출입을 저지당해 매일 밤 따로 잠 잘 곳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이때 빌리는 미국 사회에 대해 환멸감, 모멸감을 느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39년 빌리 홀리데이의 아버지인 클래런스 홀리데이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죽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빌리 홀리데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이라는 노래가 나오게 된다. 이 노래는 아벨 미로폴이라는 시인이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잃고 나무에 매달린 흑인을 묘사한 시에 멜로디를 붙여 부른 노래다. 당시 흑인들이 느꼈을 울분과 서러움을 절규하듯 토해내는 아벨 미로폴의 시를, 빌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담담한 표정으로 노래한다. 이 노래는 결국 미국 사회 전역에 만연해있던 인종차별주의의 반성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빌리 홀리데이는 타임지에 실린 최초의 흑인이 된다.
얼핏 보면 빌리의 인생은 고통을 딛고 일어난 한 인물의 전기를 보는듯하지만, 사실 비명에 몸부림치다가 무너져가는 빌리홀리데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잔혹동화와 같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기엔 너무 여렸던, 아니 어쩌면 그 절망감들은 그 누구도 견뎌낼 수 없는 크기였을지도 모른다.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은 빌리를 헤로인에 손대게 하였으며, 어린 시절 겪었던 모든 일들은 그녀에게 남성편력을 심어놨다. 또한 그녀가 만나고 결혼했던 남자들은 모두 마약중독자, 범죄자, 혹은 빌리의 재력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인간 언저리의 남자들이었으며, 어린 빌리 홀리데이를 버렸던 아버지 클래런스 홀리데이는 빌리 홀리데이가 성공하자 빌리 홀리데이의 이름을 팔아 돈을 벌었던 파렴치한이었다. 그런 부모들까지 사랑하려 했던 빌리 홀리데이는 결국 자신의 우울을 같이 짊어질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술과 마약에 의존하며 결국 1959년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마약 과다복용으로 쓰러져 숨지게 된다.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빌리 홀리데이의 말년의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몸도 마음도, 목소리도 망가지고 고장 나 버려서 듣기만 해도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목소리를 사람들은 굳이 가장 좋아한단다.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빌리가 부른 말년의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좋아하지 않았으면 한다. 신나는 곡을 불러도 처지고 슬픈 곡을 부르면 한없이 우울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우울감에 빠지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그 우울이 암세포처럼 정신을 좀 먹기 시작할 때, 그때는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들어봤으면 한다. 굳이 가사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빌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노래했을지를 생각하면서 듣다 보면 한없이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안에 있는 우울감을 게워 내다 보면 생각보다 그 슬픔을 털어내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쯤, 우울해 죽을 것만 같을 때, 딱 그때만 빌리의 음악들을 들어봤으면 한다.
아마 빌리의 음악은 현대 실용음악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엔 낯설고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정제되지 않은 원석 같은 옛 음악들도 듣다 보면 음악의 원초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인생을 노래하는 음악은 많지만 인생이,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음악은 찾기 힘든 요즘, 한 번쯤은 빠져서 들어볼 만한 음악이 아닐까
Fine 19.01.02
추천곡
Billie Holiday - Solitude
Billie Holiday - Gloomy sun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Billie Holiday - Autumn in New York
참고저서
"Lady sings the blues(1956)"
Authors: Billie Holiday, William Duf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