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건가

못 한 것과 안 한 것 사이에서

by 일부엉이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결혼 아직 못했어요~'하고 겸손하게(?) 미혼임을 밝히면

꼭 '에이~ 무슨 ㅇㅇ씨가 결혼을 못한 거예요 안 한 거지!' 하는 이라는 인사말이라도 돌아왔다.

그 말에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선택의 여지 같은 것.


하지만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나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혼이라고 말하면

질문이 되돌아올 때가 많다.


"결혼을 안 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그나마 이렇게 되돌아오는 질문은 감사한 것이...

요즘에는 '아...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그렇게 되더라고요...'하고 분위기가 숙연해질 때 마저 있다.

그러면 나의 불안한 광대특성이 발현되어 "으하하하 남자들이 보는 눈이 없지요~"같은 류의 이상한 농담을 해버리고, 분위기가 더 우울해지는 불상사도 종종 발생한다.


타인에게서 돌아오는 다른 반응만큼 나 스스로도 그 질문을 자주 되씹는다.

안 한 건가?

못한 건가? 아니 애초에 결과가 같으면 의미가 있나?'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고 항상 애정이 고팠던 녀석이었는지라 늘 애인은 있는 편이었다.

나는 딸처럼 챙김 받고 사랑받는 관계를 늘 갈망했는지라 항상 나이차이도 꽤 있는 편이었어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마다 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때마다 나를 가로막는 문제는

내가 그 사람과 결혼해서 백년해로하기를 원하는가? 가 아닌

'도저히 우리 엄마아빠를 보여줄 수 없어!'라는 두려움 같은 감정이었다.


비사회적이고 교양 없는 엄마와 아빠. 낡고 더럽고 가난한 집을 들키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운 일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너는 너희 부모님이 부끄러우냐 이 패륜아야! 하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이 불효녀는 웁니다)


아아 너무 싫다.

나는 나의 대외적인 삶을 '정상인으로 보이기 위한 몸부림, 정상인 역할극'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나는 비사회적이고 반사회적 인간이지만 하필 또 가난하고 겁 많게 태어났는지라 처절하게 정상인 흉내를 내며 사회생활을 하고 생계를 겨우 꾸려나가고 있다.

내가 비사회적인 사람인 것도 싫고 서러운데 더 비사회적인 부모와 더러운 집을 들킨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수치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이까지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면 결혼을 못한 게 맞는데... 또 나의 이런 정상인으로 보이고 싶은 정신줄마저 끊어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저 상견례과정도 불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다가도... 아닌가? 또 내가 그 정도로 사랑하면 더 부끄러워서 못 보여줬으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을 모두 진심으로 사랑했었는데. 그럼 사랑해서 결혼을 못한 건가? 아닌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근데 또 사랑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때는 그것도 사랑이었겠지.


여기에 더해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결혼을 안(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도 안 모으고 하루살이처럼 살아버리기까지 해서 지금은 가난하고 외로운 30대 후반이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이제와서는 부모님을 보여주고 자시고 다 차처 하더라도 결혼은 무리 아닐까? 누가 나같이 가난하고 다혈질에 우울증까지 있으며 애도 싫어하고 대단히 멋진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30대 후반의 나와 결혼해 줄까...


... 이렇게 몇 가지 나열하고 나니 결혼을 '못'하는 이유가 상당히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긴 한다.


그래도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답이 어딘가에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이렇게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답 비슷한 것에서 마저도 점점 더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이다.

생각을 멈춰 부엉이!



외롭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연인이 있어도 외롭다.

혼자 있으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외롭고, 연인과 있으면 그 연인의 존재가 나를 외롭게 했다.


2026년. 일단 지금 이 순간은 혼자라서 외롭다.

어제는 동생이 추천한 사주사이트에서 연애운을 봤다는 상당히 구질구질한 TMI도 한번 고백해 본다.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머리가 아득해져 사랑 말고는 아무 생각도 못 할 만큼.

어떤 소설처럼 그 사람과 함께 가족도 나라도 버리고 야반도주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으면 같이 독이든 잔을 러브샷 해버리고 다음 생에 다시 만나고 싶다.

하하.. 이런 망상들이 무색하게 나의 육체와 정신은 점점 더 싸늘해지고 있다는 것이 넌센스다.

이제 불가능한 것이라는 걸 알아서 더 망상하게 되는 걸까? 나의 연애세포는 이미 치매의 수순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지금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었더라?

그래, 그거였지.

나는 결혼을 못 한 걸까, 안 한 걸까.

아니면 아직도 누군가에게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도망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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