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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Jul 26. 2022

대설주의보

타운하우스의 겨울




타운하우스에 살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은 바로 겨울철 제설 문제이다.

여름에 이사 왔기 때문에 겨울이 예상되지 않아서 더 그랬다.

아침 출근길에 직장까지 차로 35분 거리였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교통체증에 좀 더 서둘러야 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제설용품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인터넷에 제설용품을 검색하면 나오는 가장 기본 장비들을 구입했다.

초록색 빗자루와, 넉가래(제설용 삽)를 눈을 퍼내는 삽과 눈을 밀어서 쓰는 용도의 삽 두 개를 구비하여 차고지에 넣어두었다.  

'이로써 겨울나기 준비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편은 염화칼슘을 강조하더니 구매했다.



"이게 얼마나 유용하냐면.."

나는 군대를 가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제설을 해야 한다는 건 나에게 부담감보다는 설레는 일이었다.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회사에 못 가면 그것도 나름 재밌는 추억거리지 않을까(응 아니야..)

아무튼 겨울에 제설이 걱정거리긴 했다.



드디어 마침내 대설 예보가 떴다.

눈이 쌓이고 낮은 기온에 도로가 꽁꽁 얼어버리면 미끄러워서 잘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다행히도 기온은 생각보다 높았고, 마을 입구까지 제설 차가 그새 다녀갔는지 깨끗하게 정비되어있었다.

늦은 시각과 이른 새벽부터 제설하는 분들께 너무나 감사했다. 덕분에 겨울 내내 폭설이 오던 날도 역까지 내려가는 도로를 이용하면서 문제가 없었다. 제설차가 다니는 곳이라 다행스러웠다.



단, 단지 내 도로는 직접 제설을 해야만 했었다.

우리 집은 경사로가 있는 도로에 있다. 각자 내 집 앞에 눈은 맡아서 쓸어야 한다. 그래야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도로를 조심조심 내려갈 수 있다. 퇴근길에 경우는 반대로, 단지의 오르막길로 올라갈 때를 더 윗집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집도 쓸어야만 했다. 마치 서로 어떤 시그널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임무처럼.



대설 예보가 떴던 첫 주말,  눈이 많이 온다는 설렘과 동시에 늦잠도 포기하더라도 일찍 일어나리란 생각으로 잠을 잤다.

오전 8시 눈을 뜨자, 온통 새 하얀 풍경을 마주했다.


"여보 일어나 봐! 눈 엄청 내렸다. 제설해야지"



준비했던 삽을 갖고 내려갔는데 도로가 깨끗하다. 저마다 벌써 제설을 다 해놨던 것이다.

"우리가 제일 꼴찌야."


제설을 하는 데 기대했던 힘듦보다 눈이 많이 와서 재미가 컸다. 넉가래가 커서 밀어내니 금방 금방 정리가 되었다. 계단도 쓸고 그러다가 눈을 모아서 던지기도 하고 옷 속에 넣어 냉마사지도 해주다가, 눈사람도 만들고 아무튼 즐겁게 재설을 마쳤다.


ㄱ자 형태라 넓기도 넓은 우리집 앞 도로



 

그러다 점차 실력이 늘어, 둘이서 15분 만에 제설을 끝내기도 했다.

사실 낮 동안 해가 쨍쨍하면서 눈이 잘 녹았다. 특히 전 날에 미리 염화칼슘만 뿌려줘도 금세 녹는 바람에, 제설을 딱히 자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밤에 눈이 그치면 남편이 혼자 나가서 제설을 하고 오기도 했다.



"벌써 눈 치워? 나도 갈래"


재미로 따라나섰지만, 제설을 하다 보면 땀도 나도 운동도 된다. 그렇게 두세 번 정도 하니.



"주말에 눈 또 온데"

"제설해야겠네"


눈이 내내 오던 일주일에는 도로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오르막 길에서 결국 바퀴가 헛돌면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오~ 안 되겠다 안 되겠다"

집에 다 와서도 올라오지 못해 삽으로 퍼내기도 했다.

우리 쪽 도로가 제설이 안 되어있는 경우에는 제설이 잘 되어있는 옆 라인 도로로 올라가서 내려올 때도 있었다.


'주말에 집을 비울 때도 많으니까.'

이때도 역시 이웃 간의 배려의 미덕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염화칼슘 덕분인지 몰라도 제설 작업이 많지 않았다. 총 5번 정도 했나.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오는 날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그리고 나보다는 남편이 자주 부지런하게 움직여준 덕분이다. 겨울에 눈 때문에 직장에 못 나오거나 하는 일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고 아쉽게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차가 막혀 조금 늦은 것 빼고는.



눈을 쓸러 나오면 이웃 분들이 나와서 쓸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정겹기도 했다. 눈 쓰는 데도 즐거운 걸 보니 눈 와서 좋은 건 다 같구나.


작년 겨울에는 포대를 갖고 와서 썰매를 타고 싶은 충동을 누군가 볼까 참았지만, 올 겨울에는 꼭 시도해보리라.

이런 다짐과 더불어, 


제설을 하면서 느낀 점.

제설차가 다니는 큰 도로 주변에 살아야 한다.

단지 내에서는 각자 내 집은 내가 쓴다는 마음으로 제설에 충실해야 한다.(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그럼에도 눈이 많이 오는 게 행복하다.

아직 1년 차라 그럴 수도 있지만,

제설의 귀찮음 보다 눈 오는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이 너무너무 크다.








눈 쌓인 맑은 날은 맑아서 좋고,

흐린 날은 운치 있는 설경을 볼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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