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보리 Jul 04. 2022

부모님의 선물

우리 집 나무들



 이사  얼마 뒤 처음으로 양가 부모님이 방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하게 잘 꾸몄다며 마음에 들어 하셨다.

특히 넓고 빈 마당을 보시고는 양가 부모님 모두 사과 대추나무, 감나무를 심으라 하셨고 꽃도 많이 심어 보라고 하셨다. 나무를 많이 심으면 나중에 그늘이 생겨서 좋다는 이유로 심으라고 하신 것이다.



사실 우리 같은 젊은 부부는 과실나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사과대추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감나무는 좋긴 한 데 감이 열리려면 적어도 5년 이상, 10년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사 먹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크다.  게다가 여긴 시골 마당도 아니니까. 나의 경우, 관상용 나무로 깔끔하게 조경이 되는 유럽식 정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길쭉길쭉한 율마 같은 뭐 그런 것.


반면 신랑은 대나무로 양 옆을 두르고 동아시아풍의

조경을 생각했다.

 다 장점이 분명하지만, 생육환경도 은근 중요했다.

유럽식 정원을 위해 찾아본 나무들은 온도와 관리가 까다로운 종자로, 생각보다 겨울에 잘 죽는 다고 한다.

'아직 잔디 관리도 안 해봤는데, 나무라니..'




이렇게 고민하느라 정원 꾸미기에 뒷 전이었는데, 빈 잔디마당이 안 쓰러우셨는지.

친정 아빠가 블루베리 나무를 추천하시며

 "아빠가 몇 그루 사서 보내줄게. 나중에 열매 나오면 먹고 좋을 거야"라고 하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무려 27그루의 블루베리 나무(화분)를 사서 배송시켜 주셨다.


집에 트럭 채로 배송이 와서 "어디에 둘까요?"라고 전화가 오는 바람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사 오고 가장 난감했던 일이기도 했다.

한두 그루 말씀한 줄 알았는데, 선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수의 블루베리 나무들.

마당이 넓긴 하다지만 진짜로 울 뻔했다.


"블루베리 배송 왔어. 어때? 너무 좋지?"

"....."

"나중에 아이도 낳고 블루베리 실컷 먹게 해 줄게"

"너무 많은데"


전화받은 딸이 예상과는 다르게 기쁜 반응보다 울먹이는 반응에 당황하셨는지, 나무를 심지 말고 화분 채로 놓으라고 하셨고, 정 맘에 들면 몇 그루씩 판매하면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하셨다. 

신랑은 오히려 (한바탕 난리가 난) 내 반응에 "뭐 얼마나 그렇길래"라며 퇴근 후 보더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하자"며 나를 달래주었다.

계획대로 못했지만 쭉 둘러놓고 나니 '뭐 나쁘지 않네.' 괜찮다며, 아빠께 고맙다고 다시 전했다.



그 이후로도 종종 감나무, 사과나무, 사과대추나무를 사 오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삽을 퍼서 신랑과 위치를 정해서 심었다. "후회 안 할 거야"라는 말에 그냥 뭐가 좋은지도 모르는 채로.


사과나무 심기.


시부모님은 한 시간 반 걸려서 자주 오시지 않으셨지만, 언젠가 한 번 감나무버섯이 열리는 나무를 사 오셨다.

감나무가 없는 줄 아시고 사 오신 선물이었고,  그리하여 감나무 그루가 생겼다.


신랑과 나는 특별히 마당에 대한 고집이 없었기 때문에 양가 부모님의 선물에 대해 '감사히 받자'며 키우기로 했으나, 이러다간 마당에 온 통 나무로 둘러싸여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더 이상 그만 사 오시라고 선언했다.

한 그루 사 올 때마다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시골에 사셨던 경험으로, 좋은 걸 알려주고 주고 싶어 한다. 종종 우리 의견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른들의 경험을 믿고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렇게 불필요하게 늘어난 나머지, 내가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기에 나무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관리하지 않게 된다. 그냥 알아서 잘 자라주겠거니 하면서.


블루베리 화분들


결국, 100만 원가량의 6년생 블루베리 나무 22그루가 추운 겨울을 못나고 얼어서 죽었다. 봄에 피워야 할 새순과 가지가 잘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후 봄, 여름에 이틀에 한 번씩 꼭 물을 주었는데, 지금은 거의 5그루 정도만 푸릇푸릇 살아있다.


친정 아빠는 "어쩔 수 없다. 산이라 많이 추운가 보다"라고 "겨울에 너무 물을 안 줘서 그렇대"라고 하셨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 또한 여름 되면 블루베리 농장만큼은 아니더라도 블루베리를 실컷 먹을 수 있겠다는 마음에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죽어가는 나무들을 보며

'고양이들이 화분에 똥 싸서 그런가?(그도 그럴 것이 옆집 고양이가 자주 넘어와 화분을 자기 집 화장실 마냥 이용해왔다.) '아님 화분에 그대로 놔둬서 문제인 건가..'라고 생각해보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한 담.


대신, 블루베리 나무화분 자리 옆 빈자리에 토마토와 가지, 고추, 오이, 호박 등 모종을 다양하게 심었다. 


건강한 블루베리와 거의 죽어가는 나무

비료와 흙이 좋은 상태라 아까워서 심었는 데 생각보다 잘 자라주고 있다.

아직 다행인 건 몇 그루 살아있는 곳에서 블루베리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나머지 죽은 블루베리 나무의 경우 '내년에는 다시 새순이 돋아났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님이 주신 선물을 맘맛보고 싶다.



감나무 두 그루와 사과대추나무 두 그루는 특별히 더운 날 물 준 것 외에 놔둔 채로 잘 자라주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튼튼한 5년 생 감나무 두 그루가 오히려 새순이 안 나와서 걱정된다. 겨울이 너무 추웠나. 사과나무는 유독 진딧물이 많아 약을 쳐주었다.


나무도 심고 나서 1년 간은 우리 집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데, 우리가 적응했던 것처럼.




비록 우리 부부가 원하는 대로 아직은 정원을 꾸미진 못 했다. (그래도 현재에 만족한다. 또한 아직 넓으니까)

그래도 부모님들 덕분에 마당이 꽉찬 느낌에 든든하다. 봄철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나는 과정을 하루 하루 눈으로 관찰하다 보면 살아있는 것에 대한 경외심도 생긴다.


나무를 심을 때 '후회하지 않을 거야'가 아닌 '그늘막이 있어 너무 시원하고 좋다'라는 생각이 들려면,

우리도 나무가 크는 것처럼, 잎이 지고 나고를 반복하며 무르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이전 09화 옆집 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