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비행기를 타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창밖 아래로 천천히 지나가는 사막과 산맥을 내려다보면 저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가 싶기도 하고, 야경(夜景) 속 불빛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집들을 보면 집안의 대소사가 다 보이는 것도 같다. 웃고, 울고, 화내고, 사랑하고. 그렇게 삶이 티끌이 되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복잡한 세상도 한 줌의 욕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날고 있으면 생각도 하늘을 닮아 간다.
# 좁은 골목길, 평상(平床) 위에 누워있는 어린아이. 다닥다닥 붙은 처마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고 있다. “어른이 되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닐 거야.” 까마득히 높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꿈처럼 멀리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하던 시절에 골목길의 평상은, 아이들의 놀이터고 공부방이며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다. 숙제를 하다 잠이 들기도 하고, 지루해지면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내던 평상에서 꿈을 찾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시절에 꿈꾸었던 ‘계란 장수’에 비하면, ‘비행기 조종사’는 꽤 그럴싸하면서도 비교적 현실적인 꿈이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비행기 조종사라는 어린 시절의 꿈은 차츰 잊혔다. 내가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취직을 해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면서부터다.
지난 시간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힘들면 힘든 대로 의미가 있었고 기쁘면 기쁜 대로 좋았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어디 나뿐이었겠나? 세상 사람들 모두가 겪는 일인데 그만하면 잘 살아왔고 잘 견뎌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곤 한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파고들면 어렵고 힘든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청소년기는 물론이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했던 청년기, 치열한 삶 속에 고민하고 갈등하던 중년기의 힘든 시간들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잊으려고 했고 바람대로 잊혔을 뿐. 세월은 아픈 상처도 주지만, 망각(忘却)의 힘을 통해 치유도 해준다. 그래야 힘든 인생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고,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고 해서 더 잘 살 자신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그 힘든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으로 주어진 시간에 더 충실할 생각이다. 살아오면서 내게도 많은 꿈들이 머물고 지나갔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릴 때조차 꿈이 있었는데 정작 어른이 되고 나서 꿈을 잊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진 것을 느낀다.
“그깟 꿈이 뭐라고? 노후를 여유 있게 보낼 경제력만 있으면 되는 거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족한 것이 있으니 일정한 소득도 생각해야 하고, 그 소득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서 얻고 싶으니 공부도 하고 준비도 해야 한다. 가치 있고 보람이 있는 일을 하면서 내 노후를 설계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근사한 일이다. 아마 내가 경제적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상태였다면 꿈은 더 멀어졌을 것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어느 소설가의 글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서 일 것이다. 구름 아래, ‘평상 위의 어린아이’를 만나면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꿈이 있는 한, 우리는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