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모처럼 정든 회사를 방문했다. 재직 중인 후배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회사는, 한가한 주말 이어선지 텅 빈 공간이 더 낯설어 보인다. 경비를 하시는 분들도 일부 바뀐 것 같고 로비의 테이블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도 거의 모르는 얼굴들이다.
회사 문을 나선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낯설 수 있을까?
퇴직을 몇 개월 앞두고부터는 출근길의 풍경조차 생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길이 그동안 내가 오고 갔던 길이 맞나? 밥 먹고 나면 학교 가는 것이 당연했던 어린 시절처럼, 눈 뜨면 회사 가고 해 지면 집으로 달려오던 길은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지나간 세월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어느 날, 퇴근길에 멀어지는 회사를 보기 위해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냥 그렇게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점차 회사가 흔들리며 멀어졌다.
사랑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과 나는 그와 비슷한 몇 차례의 인사를 나누며 작별했다. 생각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들어붙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차츰 멀어지기 시작한다.
취업 준비에 매달렸던 대학 시절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것도 이즈음이다. 밤이 늦어 문 닫은 도서관을 뒤로,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던 시내의 야경은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도 없던 시절. 멀리서 반짝이던 불빛은 어둡고 불투명한 내 젊은 날과는 너무나 대조적이기에 더욱 빛나고 멀어 보이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많은 가정처럼 나 역시 집안의 장남인 탓에 취업이 절박했다.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취업을 하게 되자 내 앞길에 환하고 밝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커다란 그 빛은 어두움과 함께 크고 작은 꿈들까지도 모두 지워버렸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그래도 풍족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후를 아무 걱정 없이 보낼 만한 형편을 갖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무엇을 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몸과 마음도 한창때를 지나니 가치관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언제까지 돈을 벌어야 하고,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지, 내 꿈은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할지 등을 생각하다 보면 남은 시간과 함께 건강도 자꾸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늘 선택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리가 잘 담겨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생기기 마련이다. 애써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지만, ‘가지 않은 길’은 아무래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을 감출 수 없다.
‘이 길이 아니라 저 길로 갔다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부질없어서 짠하고, ‘훗날’을 기약하며 멀어진 순간을 생각하면 돌이킬 수 없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과연 훗날은 있기나 한 걸까? 가지 않았던 또는 가지 못했던 그 길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한 번에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길이 최선의 길이었다고 믿고 싶다. 세월이 흐른 더 먼 훗날, 나는 아마 오늘을 기억하며 같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네가 간 길이 최고의 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