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책 속의 이야기

by 김영창


빈 침대가 들어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환자를 실어 나르고, 이동 중인 구급차 위로 텅 빈 하늘이 흔들리며 뒤따른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 의료기관의 병상(病床). 영상 속의 환자는 그 병상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다큐의 첫 장면처럼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죽어갈지도 모른다.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독서 리스트를 뽑다가 제목에 눈이 끌려 검색해 보니, 몇 해 전에 상영된 다큐영화 ‘목숨’의 제작 후기였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영화였기에 얼른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니 모현 호스피스 병동의 장면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나도 인생과 작별할 때 암으로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있잖아요. 인생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또 가족과 이별을 나눌 시간도 있으니까요. 내 개인적으로는 엄마도 남편도 암으로 가니까, 엄마와 남편의 고통을 내가 좀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고통스러웠겠구나. 두렵기는 하지만 나중에 나도 암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느님께 기도해요.”


1년 전, 자신의 어머니를 암으로 보낸 그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번에는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내의 사연이 기구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점차로 “그런 생각이 맞겠다’로 생각이 바뀌는 것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당신이 먼저 가는 게 복이 있는 거라고, 나 아플 때 누가 간호해주냐고. 애들이 바쁘면 간병인 붙일 텐데, 당신은 좋은 거라고 우스개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는데…”


억지로 웃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쩌지 못해 한 손으로 닦으며 인터뷰를 이어가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환자를 대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반문도 든다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반년 정도를 머무른다는 호스피스 병동. 호스피스 병동이라고 하면 다들 죽으러 가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곳이다.


‘목숨’에 등장하는 환자와 가족이 주고받는 얘기를 듣다 보면, 죽음보다 오히려 삶에 대한 생각이 더 꽉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일상의 소중함은 물론 생의 한 면만을 보고 반대편을 보지 못했던 어리석음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학교사로 재직했지만 늘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녀서 동네 사람들이 줄곧 체육교사인 줄 알았다는 박진우 님.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짜장면이 먹고 싶어 병원 밖으로 링거 스탠드를 밀고 다니던 박진우 님은 떠나는 뒷모습도 아름다웠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병원의 식구들과 신학생은 거수경례로 마지막 배웅을 했고 그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울컥한 마음과 함께 눈시울을 젖게 한다.


거칠 것 없는 성격의 박진우 님도 죽음을 앞에 두고 보름간 분노와 우울의 시간을 거쳤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수용의 길로 들어선 박진우 님의 모습은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음 앞에서 당당했고 유쾌했다.


죽음을 공론화한,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상실의 5단계는 환자에 따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여러 단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겨우 죽음을 수용한 듯하다가도 다시 기도실에 가면 분노를 터뜨리거나 살려주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분노와 우울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누군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살아온 대로 죽어간다. 기적 같은 마무리는 머릿속에나 존재할 뿐이다. ‘때가 되면 몸도 마음도 준비가 되겠지’, ‘내 마지막은 우아하고도 담담하겠지’ 하고 여기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마지막 순간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


감독 역시 아름다운 사별을 별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통증이 해결되면 식욕으로, 식욕을 해결하면, 만남 등 으로 끝없이 욕구를 채워가려 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것들이 거의 일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건강을 잃어 본 사람이 아니면 일상이 행복이고 기적인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리를 다쳐 장기간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두 발로 걷고, 내 힘으로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을 하는 것조차 소망이고 특별한 일이 된다. 완치가 어려운 사람이 걷게 되면 그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러니 딱히 불편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말은 흘려듣기 좋은 말이다.


“ 호스피스에서의 마지막 보름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한 사람의 생이 압축되는 호스피스에서는, 병실 내에서 환자끼리 지내는 모습이나 의료진을 대하는 모습 등을 보면 ‘아, 이 사람은 평소에도 이렇게 살아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칠순이 된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암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기로 유명한 췌장암 환자라 몹시 아플 거라는 걸 병원 직원들이 모두 알고 있었지만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괜찮아요. 다 좋아요. 편안해요. 고마워요.” 그녀는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며 감사와 배려만 표현했다.


이런 환자가 4인실에 한 명만 있어도 나머지 환자들은 그 온기와 배려에 전염되어 편안함을 느낀다. 그처럼 온기를 전하는 한 명이 없으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커튼을 드리운다. 서로가 온기가 없을 때 이웃한 환자들은 소음이고 냄새며 인기척일 따름이다.”


진통제로도 해결이 안 되는 신창렬 님. 아무리 약을 강하게 해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고 짜증과 분노를 달고 사는 신창렬 님은 후두암보다 외로움이 더 큰 병이었다. 우리는 육체적 고통만 아프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들은 심리적, 영적, 사회적 고통도 아프다고 표현하고 실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외로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서슴없이 하던 그에게 신학생 스테파노가 특수요원으로 붙었다. 종교적 회의 때문에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험이 있는 신학생 스테파노는 신창렬 님에게 최선의 사랑을 베풀었고 결국 기적이 일어났다. 암도 깨끗이 낫고 호스피스 병동을 나서 사회로 복귀한 것이다.


힘든 삶의 고비를 넘어 살 만할 때, 맞는 죽음은 얼마나 고통과 분노가 클까? 그럼에도 죽음을 수용한 김정자 님은 참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 김정자 님의 경우를 보고 처음에는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었다면 몇 년에 걸쳐 다큐를 세 번 정도 보고 나니, 이제야 김정자 님의 표정과 말이 들어오는 것 같다.


“우리 하나님이 하얀 옷을 입고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저를 두 손으로 끌어 안네요. 가벼워요. 아, 날아갈 것 같아”


억울한 사연을 딛고 죽음을 수용한 김정자 님의 근사체험 이야기는 마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생(死後生)’을 보는 듯하다. 김정자 님도 그의 얘기처럼 눈부신 빛 속으로 들어가며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느끼지 않았을까? 평온과 안식을 찾고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생을 마감했기를 바란다.


“올바른 정신으로 삶을 영위할 기회 역시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을 만들며 절절히 깨우친 바다.”



같은 내용을 두고 영화의 제목은 ‘목숨’이지만, 책의 제목은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이다. 결국 ‘목숨’은 삶의 얘기다. 죽음이 불편하다고 멀리 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면 죽을 때나 깨우칠 수 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 얘기는 바로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와 가족들이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하는 것들이며 이창재 감독이 전하고자 메시지이기도 하다.


“Carpe diem.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그리고 즐겨라. 너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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