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티고네(Antigone, 2019)

무비스토리

by 김영창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참 인간적이다. 세상을 창조하는 권능과 신성(神性)을 갖고 있으면서도 속세의 인간과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때로는 질투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신화(神話) 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갈등하는 신들의 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사연을 거쳐 인간이 마침내 신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하나도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간의 모습과 본성을 닮은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천상(天上)의 세계에서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인간들과 소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심리학과 문학의 소재로 그림이나 조각 등으로 긴 세월을 인류와 함께 해 온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이번에는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로 투영됐다.


영화 안티고네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는 소포클레스(Sophocles)의 희곡, <안티고네 Antigone>를 현대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 역시 신화 속 그대로다.


영화의 맥락과 구성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왕>의 줄거리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신탁(神託)의 저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게 되는 비극적인 줄거리로 유명한 <오이디푸스왕> 역시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은 자신에 그치지 않고 왕비와 자식들에게까지 이른다.


이런 오이디푸스의 가족 관계를 살펴보면 주인공 안티고네의 비극적인 결말이 예견되기도 한다. 안티고네는 바로 오이디푸스의 친딸이자 누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앞을 못 보는 오이디푸스가 숨을 멈출 때까지 손을 잡고 방랑길을 도운 이도 안티고네였고, 당시 새로운 왕의 서슬 퍼런 명령을 어기고 작은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해 준 사람도 안티고네였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녀의 캐릭터는 각색한 영화에서도 한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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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사정으로 조국을 떠난 이민자가 맞닥뜨려야 하는 낯선 현실은 환경과 언어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것만큼 사회의 관습이나 윤리도 다를 것이고 무지와 편견으로 인한 혐오와 분노는 더욱 두렵게 다가올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민자, 소수 집단, 여성, 취약 계층 등을 향한 외부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타자화(他者化)시킴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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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으니까 또는 나 자신과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니까 등등의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차별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한 두 사람에게 그치지 않고 집단화할 때 발생하는 사회 현상이다.


https://tv.naver.com/v/16751115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시켜요

캐나다로 이민을 온 안티고네의 가족이 견뎌 내야 할 상황도 이와 별반 다름이 없다. 신화 속의 이야기처럼 주인공 안티고네는 작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위해 실정법을 거부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것을 결심한다.


눈물이 그렁한 눈동자와 작은 입술을 가진 주인공의 모습이 저항이라는 단어와 어울려 보이지 않아 더욱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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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리스 비극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전반에 걸쳐 코러스의 개입이 존재하는데, 신화에서 코러스는 테바이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인물의 행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등장인물이 경험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글의 심정을 표현하는 집단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 댓글을 달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코러스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이를 영화에 반영하기로 했다.” - 소피 데라스페(Sophie Deraspe) 감독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087863&memberNo=33056782

출처: 수입사 그린나래미디어)




현대에 와서 코러스(Chorus)의 의미가 합창단 또는 후렴구 등으로 의미가 바뀌긴 했지만,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도 코러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이크도 없고 지붕도 없는 커다란 야외 무대의 특성상 운집한 수많은 관객에게 극 중의 줄거리는 물론 배우의 대사 전달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러스를 내세워 노래나 춤 등의 시각적인 볼거리도 제공하고 극 중의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Mon coeur me dit(내 심장이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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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차용한 이 코러스의 개념은 영화에서도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이끌며 주제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족을 향한 이민자 소녀의 간절한 소망은 남자친구 하이몬을 시작으로 또래 젊은이들의 동조와 뜨거운 참여 속에 소셜 미디어를 달궜고 마침내 이들 가족을 석방으로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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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땅을 떠나, 자신의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조국(祖國)으로 원치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안티고네의 운명이 신화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에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녀를 신화에서 구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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