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무엇인가?

책 속의 이야기

by 김영창


책장을 덮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퇴직을 앞둔 당시의 심경을 적은 글이 생각났다.


“퇴직을 앞두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평소에는 거의 생각지도 않고 살던 철학적인 주제에 골몰하는가 하면, 평범한 일상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등 세상 보기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별스럽게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는구나.” 하는 심정이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적이고 있으니 그새 나 자신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끝을 생각하니 생전 궁금하지도 않던 처음과 중간의 과정에 대한 의문까지 생겼다고나 할까? 남은 시간을 떠올리니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기의 삶이 무엇인가 불완전하고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종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 이런 의식이 움트지 않는 곳에는 종교가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되돌아보면 허망하기도 하고 앞을 내다봐도 끝을 알 수 없는 죽음뿐이니 조금만 길게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의 행복이란 것도 큰 위안이 되질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나약함을 종교의 출발점으로 삼는 저자의 생각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실 각 종교는 우주의 기원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째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인가? 등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설명을 해준다. 말하자면 우주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 체계’를 제공하는 셈이다.”


바로 그것이 알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골치 아프게 이런저런 생각을 할 필요 없이 신앙을 가지고 종교가 마련해 놓은 ‘설명 체계'를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불공정한 현실은 물론 죽음 뒤의 세계 등에 대해 이렇다고 속시원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종교의 설명 체계는 물론이고, 시대의 관습이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교리나 믿음조차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란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이와 반대로 일반적으로 아무 반성 없이 그대로 따르는 신조(信條)나 의미 체계를 무조건 그대로 수납(收納)할 수 없음을 확신하는 일이다. 칸트는 이런 태도의 믿음을 ‘회의적 신앙'이라 하고 이것만이 참다운 믿음이라고 했다.”


믿음의 실체가 절대자의 전지전능한 권위를 기록한 성경이라 할지라도 이를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해보고 그것이 옳고 그른지 파악해보기를 권하는 것도 당황스럽다. 대부분의 신앙인은 성직자나 목회자의 입만을 바라보고 이들의 해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경건한 분위기의 실내와 기도 소리, 간간히 울려퍼지는 찬송가는 마음의 평안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신자를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아무 말 없이 지긋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부처님의 모습과 함께 적막한 분위기의 법당도 얽히고설킨 마음을 가다듬는데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진리의 말씀을 되새기고 그대로 내 영혼을 맡기기만 하면 그만일뿐이다. 그런데 그 숭고한 진리를 곱씹어 보라는 얘기는 또 무엇인가?


“흔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이론이나 진술, 교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대로 자유롭게 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특정 시대나 사회적 제반 조건에 의해 결정된 어떤 특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이런 이론 체계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그대로 있음’, 실재 그 자체를 봄으로써만 참 자유가 얻어진다는 뜻이다.”


절대자의 전지전능한 권위에 순종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는 것만이 진리에 이르고 영원한 안식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자유는 오히려 실재(實在) 자체를 스스로 꿰뚫어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지 특정한 개념이나 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동안 종교를 대했던 그리고 절대자만을 향했던 생각에 작은 파문이 생긴다.


“참된 의미의 종교의 길, 진리의 길은 실재에 대해 이미 주어진 설명이나 관념에 만족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차원,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는 ‘열림’의 길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라는 성경의 구절도 영적인 길에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 내면의 완성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철학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저자 역시 최근에 와서 종교와 철학을 구분하게 됐지만 옛날에는, 특히 동양에서는 그런 구별이 없었다고 하며 인간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둘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시대의 관습이나 체제에 대한 생각과 같이 종교에 대한 생각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참된 종교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어느 종교이든 닫힌 종교일 수도 있고 또 열린 종교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한 종교 안에 닫힌 종교와 열린 종교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 종교의 참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표면적 문자에 매달린 채 언제까지나 질식할 것 같은 종교 생활만을 계속하게 한다면 그 종교는 그대로 닫힌 종교가 되는 것이고, 종교의 참뜻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종교가 본래 의도했던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 삶을 살도록 한다면 그 종교는 열린 종교가 되는 것이다.”


종교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인류는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벗어나기 힘들지 모른다. 이것은 단지 종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전(經典)을 성직자의 관점에서 또는 자신의 관점에서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려는 문자주의의 폐해는 어느 시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피해 갈 수 없었다.


“스스로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한다는 고집은 그 동기가 어떻든 간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성경을 말할 수 없이 왜곡시키고 그 효용성을 모두 없애는 데 공헌한다.”


경전의 해석을 둘러싸고 종교 간의 불화를 넘어서 전쟁으로 이어졌던 어두운 역사는 오늘날까지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순교’라는 믿음으로 무장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은 물론 또 다른 생명을 무자비하게 빼앗는 테러가 자행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영향력있는 신학자의 내 종교만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배타주의적 관점도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주의자들’ 내지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신학자는 스위스 바젤대학교 교수로 있던 칼 바르트Karl Barth였다. 바르트는 인간이란 본래 스스로 하느님을 알 수도 없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의 게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뿐이므로 그리스도와 복음을 모르는 모든 종교는 결국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시대와 사회적 관습에 따라 종교의 의미와 역할도 모습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항상 정의일 수는 없다. 정치와 종교는 때로 권력을 양분하기도 하고 한 몸으로 합체가 돼서 지내온 역사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의 현실 참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여기서 종교인은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관여 안 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의 현실 참여가 진정으로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죽인 종교적.신앙적 무아의 경지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적어도 그런 자각 위에 기초된 것인가 혹은 자기중심적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은 아닌가 등을 냉철히 검토할 것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려면 세속적 의미의 권력 지향이 아니라 평화와 생명을 높이는 인류 보편적 가치 지향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언급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종교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가족과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누구는 현세(現世)의 구복을 좇아 종교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또 누구는 내세(來世)의 영원한 안식을 찾아 신앙을 갖기도 한다.




어쩌면 과거부터 종교는 그대로 있었는데 이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종교의 모습이 달리 비치는 것은 아닐까?


종교란 무엇인가? 내 안에서 답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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