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이야기
삶에서 경험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어 봐야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것만큼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쌓여 그대로 내 삶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인생이란 경험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세상에는 남녀의 성별과 인간관계의 역할을 바꾸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죽음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완화의료 병동의 간호사인 샐리 티스데일이 가까운 지인의 죽음과 말기 환자를 치료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저자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에 의학적 증상을 더하니, 책장을 덮고 나면 죽어가는 과정이나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좀 더 선명해 보인다.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에게 죽음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철학적 깨달음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간다. 젊어서는 사고나 급작스런 질병이 아니면 웬만해서 죽음을 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죽음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우니 그저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 형제를 비롯한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접하고 나면 충격과 함께 비로소 죽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삶에 죽음이 없다면, ‘생명의 소중함’이나 ‘현재의 가치’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유한(有限)이라는 한계가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한 셈이다.
“임종 과정은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주도해야 한다. 사전에 작성해 둔 서류, 평소 나눴던 대화, 당사자의 바람으로 알려지거나 추측되는 점을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아직도 현실에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마무리에 대한 결정조차 당사자인 환자가 제삼자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말기 치료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하는 환자나 가족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갑자기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거나 심각한 상황을 맞고서야 당황한 가족은 의사에게 “어떻게든 해주세요”, “선생님이 더 잘 아실 테니 알아서 해주세요.” 등의 말로 매달리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졸속한 결정이 가져올 고통이다.
“인공영양(人工營養), 즉 튜브를 끼워 영양분을 보급하는 경관영양(經管營養)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환자가 음식물을 삼킬 수 없으면 위에 튜브를 삽입해 유동식과 약물을 공급한다. 경구섭취(經口攝取)가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정한 수술 후에 일시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겐 고문이나 다름없다. 경관영양은 통증과 감염, 궤양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부작용이 없더라도, 임종 환자에게 인공영양은 아무 소용이 없다. 병을 치료해 주지도 못하고, 생명을 연장해 주지도 못한다. 설사 얼마간 연장해 준다 해도, 종착역으로 향해가는 기차를 억지로 잠시 붙잡는 꼴이다. 그런 이유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마다 경관영양을 구체적으로 다룬 항목이 있다.”
삶의 질(質) 만큼이나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죽어가는 과정이 길어 봐야 얼마나 길까 싶지만 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에서 각종 의료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머리를 천장으로 향한 채 멍하니 누워있는 환자들을 목격하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의료 행위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환자는 물론 가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늙어서 오랫동안 질병을 앓다가 고통 끝에 죽음을 맞는 것은 정말 최악이 아닐 수 없다. 늙고 병드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고통과 함께 생을 이어가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기 몇 달 전과 몇 주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람은 죽을 때 그리고 죽음 다음에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당신이 당장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책 속에는 죽어가는 환자가 겪게 되는 과정이 시기별로 상세히 서술돼 있고, 환자를 위로하는 방법에서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 그리고 시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애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적혀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집에서 모실 경우, 가족은 환자를 사랑으로 보살피긴 하지만 대개 환자의 고통스러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약물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위생이나 살균 면에서 시설보다 부족하기에 여러모로 불편하다. 1930년대처럼 대가족이 모여 살지도 않고, 장거리 출퇴근과 초과 근무 때문에 환자를 하루 종일 돌보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병원에서 숨질 가능성이 더 크다.”
핵가족화된 시대가 되다 보니 간병을 맡을 사람도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의료적인 처치나 위생, 살균 등의 이유로 환자가 받을 정서적인 충격은 간과되고 있다. 심신이 미약한 환자가 정든 집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또 질병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서 환자를 가급적 오랫동안 집에서 간병하려 해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치료나 사망진단 등의 문제 때문에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완화의료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완화의료는 좋은 죽음을 맞는 데 필요한 온갖 것을 지원한다. 그런데도 각종 치료에 물 쓰듯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극히 미미한 비용만 완화의료에 쓰인다.”
죽음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한다. 공격적인 말기 치료에 매달리느라 잔여기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 죽음을 맞을 것인지,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줄이면서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활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환자에게 달려있다.
완화의료는 치료가 어려운 말기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통증 및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완화하여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생명의 끈을 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선택에 따라 삶의 마지막이 달라질 수 있다.
“정상적인 죽음의 과정인데 간병인과 가족이 특히 괴로워하는 게 있다. 바로 죽어가는 사람의 목에서 나는 가래 끓는 듯한 소리(death rattle)가 있다. 이런 요란한 호흡은 죽는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크르렁, 크르렁하고 가래 끓는 소리가 시작되면 보통 하루 안에 사망한다.” “폐에 침이 들어온 상태에서 호흡하려니 소리가 거칠고 가래 끓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상태를 표현한 내용이다. 이 책에는 위와 같은 사실적인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보기 거북하지만 궁금증이 가시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 대목도 많다. 그러나 죽음을 자주 접하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몸이 어떤 상태로 변해갈 지를 안다고 해서 죽음이 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계속, 계속, 계속 살고 싶다. 나의 임종 장면을 상상할 순 있지만, 언젠가 진짜로 죽을 거라는 사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늘 죽음 근처에서 생활을 하고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고뇌를 했을 저자의 고백이기에, ‘살고 싶다’는 그의 얘기가 단순히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가치는 깨닫는 사람만이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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