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이야기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나이 들면서 자꾸 허망해지는 마음을 바로잡고 싶었고 또 하나는,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무슨 공부가 필요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굳이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시간의 의미와 함께 그에 따른 감정의 굴곡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뭔가 그런 궁금증을 풀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준다는 점에서 <나이듦 수업>이라는 제목은 눈길을 끌 만하다.
이 책은 2015년 11월 안양문화예술재단이 각 분야의 전문가 여섯 명을 초빙해서 인문학 강연을 릴레이로 진행한 후, 이를 텍스트로 엮어낸 것이다.
고전 인문학자, 여성학 연구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노인정책 활동가,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 전문가들은, ‘노인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생로병사의 의미부터 자본주의 문화로 설정된 생애주기의 문제점, 노인 세대의 심리, 100세 시대를 맞아 일과 삶의 재구성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얘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먼저 노인의 기준부터 살펴보자.
“현 노인복지법에 노인은 65세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요. 이게 1880년대에 정한 겁니다. 평균 수명이 50이 안 됐을 때에 65세 이상을 ‘시니어’, ‘노인’이라고 규정한 거죠. 지금 평균수명이 두 배나 늘었는데 기존의 생애주기를 고수하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퇴직 이후 부쩍 나이에 대한 얘기에 민감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별로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은퇴, 노년, 인생 등의 단어를 수시로 접하다 보니 맥도 조금 빠지고 상대방의 얘기에 은근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를 생각해 보세요. 10대에 다 결혼했잖아요. 그래서 청소년기라는 게 없었습니다. 청소년기가 생겨난 건 산업혁명 후 사회. 문화가 변하면서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결혼 연령도 20대로 늦어지면서였어요.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긴 기간이 생겨난 거예요. 마찬가지로 100세인의 시대에도 ‘50+’, 대략 50대에서 60대 언저리에 계신 분들을 위한 별도의 명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the third stage(세 번째 무대)’, ‘the third age(세 번째 인생)’, the third chapter(세 번째 장)’ 등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국내에 ‘앙코르 커리어’ 개념을 소개하고 확산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노인정책 활동가 남경아 님(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은 특히 인생의 전환기에 얼마나 탐색을 잘했느냐에 따라, 남은 40~50년의 삶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하며 일상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탐색이란 지속적인 학습을 하고 경험을 쌓는 한편으로 관계망 구축을 통해 인생 2막을 위한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서는 것을 말한다.
‘앙코르 커리어’란 개념은 미국의 유명한 사회적 기업 앙코르닷오르그(Encore.org)의 혁신가인 마크 프리드먼(Marc Freedman)이 쓴 <앙코르(Encore)>가 국내에서 번역되면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가 이를 ‘사회공헌일자리’로 번역하고 인생 후반기의 대안적 일자리 모델로 삼으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앙코르커리어(Encore Career)’는 인생 후반의 지속적 수입(paycheck)뿐만 아니라 개인적 의미와 성취(passion), 사회적 영향과 가치(purpose) 등 이 세 가지 모두를 만족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일자리와 일거리의 개념은 분명 다른 것이지만 세대에 따라서는 거의 대등한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그만큼 나이 들어서 일자리나 일거리를 얻기가 힘들다. 노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고의 차이 역시 사소한 것 같지만 자존감과 새로운 관계망 구축에 영향을 주므로 일자리를 단순한 소일거리로 흘려버릴 일도 아니다.
<나이듦 수업>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을 노인의 사회적 기준과 앙코르 커리어 개념 소개에 할애하는 이유는, 개인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과 시기의 중요성 때문이다. 노년 초입의 일정한 나이에 4~5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나면, 의욕도 호기심도 사라져 이후는 그야말로 노인으로 늙어가는 것 외에 달리 방도를 찾기 어렵게 된다.
노후에 건강을 유지하며 맛있는 것을 먹고 사는 것도 복이겠지만, 생의 전환기에 탐색 과정을 통해서 친구도 만들고,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모색하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철없는 상태로 대부분을 보낸 삶은, 산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이 들고 오래 산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느냐가 핵심이지 그저 객관적으로, 양적으로 수명이 늘어난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건 연명에 불과합니다.”
고전 인문학자인 고미숙 님은, 무작정 오래 사는 것보다 깨어있는 상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 새로운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장수는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문화와 정신적 빈곤은 이마저도 공포의 대상으로 이미지를 바꾸어 버린다.
그렇다면 물질과 정신 중 무엇을 선택해야 안정적인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선택이라기보다는 균형의 문제입니다. 물질적 가치를 선택해서 완전히 동물 이하로 살거나 정신적 가치만 추구하여 모든 물질적 혜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게 아니고, 물질과 정신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삶도 죽음도 매한가지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평소 죽음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도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노동과 삶의 여유를 자율적으로 조절해야 하고 또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도 한다.
심리학자 김태형 님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는 노인 세대라고 진단한다. 현 노인 세대의 불행이 지배집단에 순종하고 개인주의적으로만 살아왔던 삶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또 돈으로 자기 평가를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도 노인을 더 절망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한국 노인들은 결코 악한 게 아니라 아프다는 것이다.
“한국 노인 세대는 그 삶 속에서 무력감과 패배주의, 비겁함과 복종심, 허무함과 무가치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 세대의 기본 심리를 유추할 수 있는데요. 먼저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휩싸이면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적으로 늙어가는 사람들은 지배층,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굴한 반면 가족에게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입니다. 한마디로 꼰대 스타일이 되는 거예요.”
전쟁으로 황폐하고 척박해진 땅에서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자신의 노후 준비도 미처 제대로 못한 노인 세대가 갖는 상실감은, 세대 간 대화 부재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18대 대선 때 들은 이야기인데요. 자식들이 진심을 다해서 부모님을 설득해보려 했는데 안 들으시더라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이미 비굴해져 있고 기득권층과 자기를 동일시하며 숭배하게 된 데다가 자식이 대화를 시도해서 바꾸려 하니 소통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찍어 누르는 거예요.”
고령자가 소수일 때는 ‘장수 노인’으로 축복의 인사를 건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층이 점차 늘어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국가적인 문제’로까지 확대가 되었다. 정작 당사자는 노화와 죽음의 의미조차 정리가 안돼 허둥거리는데, 이를 바라보는 인식은 ‘문제’에 그치고 있으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과연 노인은 ‘문제’일뿐의 대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