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어쩌면 바뀌고 있는 세상이 코로나 때문에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코로나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까지 빠르게 바꾸고 있다.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팬데믹(pandemic)은 역사적으로 문명이 쇠퇴할 때보다 오히려 크게 발전할 때 창궐한다고 한다. 발달된 문명이 질병이 번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잘 발달된 통신과 교통의 인프라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으며 교류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 같은 감염병 특히 호흡기 질환에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 또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소득과 행복의 관계처럼 문명의 발전과 행복도 항상 비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코로나 바이러스가 뭐길래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변형해 가며 이렇게 인류를 괴롭히는 것일까?
병원체인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세포 표면에 바이러스 입자들이 왕관 모양으로 돌출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왕관을 의미하는 라틴어 코로나(corona)가 자연스레 병명의 앞에 붙었다. 질병의 왕(king)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하니 그것만 해도 참 다행이다.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한 초기만 해도 마스크를 쓰면 그런대로 안심이 됐고 크게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가 확진자가 더 늘어나자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서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맘때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기침 한번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시기라 갑자기 기침이 나오려고 하면 고개를 숙이고 목젖으로 꾹꾹 내리눌러야 했다.
어쩌다 기침 한번 속 시원히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나?
그러고 보니 미세먼지 탓에 자전거를 타지 못한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생각도 곧 눌러 가라앉혀야 했다. 장사가 안돼 힘겨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생리 현상이나 운동을 거론하며 불편을 호소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언론의 보도를 보며 확진자의 추이를 주시하던 어느 날, 내가 맡고 있던 수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나는 도봉구청의 의뢰를 받아 신중년을 대상으로 ‘도봉액티브 50+인생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생2막을 준비하는 신중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인만큼 대면(對面)과 소통이 필수인데 구내(區內) 요양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나오자 진행이 불투명해졌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날을 보내던 중, 결국 줌(zoom)으로 ‘화상수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어떻게든 수업을 이어 가지 않으면 중도에 과정 자체가 사라질 판이니 도리가 없다.
강사인 나 자신이야 발 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마땅히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익히고 교육 설계를 해야 했지만 문제는 수강 대상이 IT에 익숙하지 않은 중년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줌에 대비한 교육을 미리 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닥친 일이라 일일히 전화 통화로 해결해야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관계된 지식은 대부분 경험이 우선이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한번 해 보고 나면 세탁기, 냉장고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숨은 편리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디지털 세상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년들의 IT강좌는 대부분 지원자도 많고 수업 평가도 좋은 편이다.
줌 설치와 운영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나 역시 한번도 줌으로 진행해 본 경험이 없어 재직 시절의 방송 프로그램처럼 분 단위로 큐시트를 짜면서 오차를 줄이려 애썼다.
수업 당일, 모니터 안에서 언택트 기술의 배경과 문화, 새로운 연결의 의미 그리고 인생2막에서 ‘몸과 정신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등의 주제로 2시간 30분 여의 시간을 보냈다.
기술이 새롭고 환경과 문화가 다를 뿐 얘기를 주고받고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뭐가 다를까? 코로나의 영향으로 달라진 공연 문화와 함께 힙한 국악 동영상과 일러스트를 보기도 하고 한 가지 주제로 서로의 얘기를 나누면서 수업을 끝내고 나니 새로운 문화를 체험한 것에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나자 비대면이라는 낯선 상황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이 이후의 수업 분위기와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점차 실감나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역설(逆說)이다. 어쩔 수 없이 비대면과 비접촉을 해야 해서 언택트 기술을 활용해 만났을 뿐인데 이것이 서로 가까워진 계기가 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기 마련이다. 낯이 설면 속 얘기도 꺼내기 쉽지 않다. 당시의 분위기는 안 그래도 낯선 데 입학식부터 마스크를 쓰고 지내다 보니 몇 주가 지나도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안되고 교육생끼리도 서먹한 분위기가 지속되던 중이었다. 그런데 더 낯선 환경에서 진지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에 동질감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스트(host)가 되어 줌이나 시스코 웹엑스 등의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려면 설정과 화면 공유 등에서 참여자보다 조금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도 크게 힘든 것은 아니다.
경험상 그것보다는 오히려 참여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지원 프로그램인 멘티미터(mentimeter), 카훗(kahoot), 클래스카드(classcard) 등의 실시간 반응 플랫폼에 능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된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앞당겨진 비대면 문화를 겪어 본 사람들은 나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상 미팅은 사실 온라인쇼핑, 무인단말기, 셀프세탁방 등 이미 생활 속에 파고든 수많은 비대면 문화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햄버거 무인단말기 앞에서 한 번에 주문을 하지 못할까봐 쭈삣거리던 경험이 있다. 내 뒤로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으니 불안감이 더 심했다. 내 차례가 와서 몇 차례 버튼을 눌렀지만 실패하자 바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나는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깟 간편식 하나 제대로 주문도 못하다니 자존심도 상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뒤로 물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특정 기간에만 판매하던 세트 메뉴였다. 아무 것도 아닌 걸 언뜻 광고 입간판만 보고 주문했으니 나올 턱이 있나?
이후 나는 대형마트에서도 일부러 셀프계산대를 찾고 무인출력 서비스 하는 곳을 이용하는 등 생활과 관련된 각종 비대면 기술과 문화에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가 다르게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데 한번 물러서면 나중에는 버튼 입력을 못해서가 아니라 문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주문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전이 두려울 때면 내가 항상 남몰래 주문을 하듯 속삭이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선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