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치야 미안해, 그래도 국물은 국룰이잖아
꼬치에 담긴 여행의 온도
껍질이 살짝 바삭하게 익은 양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그 위에 소복이 뿌려진 지독히 자극적인 향신료 범벅이 전하는 환상의 궁합. 시안에서 만난 '꼬치'는 중국 본토 요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사실 한국에서도 종종 중국식 꼬치를 즐겨온 우리 가족이다. 그 꼬치가 그 꼬치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기에서 나는 향, 양념, 굽는 방식까지 분명 업그레이드다. 중국 본토 여행은 처음이 아이들이 한 입 베어 물고는 곧장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 이게 진짜 중국 맛이구나!"
맥주와 궁합 또한 역시나 환상이다. 우리가 꼬치를 대체 몇 차례나 더 시켰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중국 여행의 사실상 첫날 저녁이었다. 여행의 시작이 이 정도면, 앞으로 뭐가 나올지 기대가 확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시안의 꼬치는 중국 맛기행의 서막을 열기에 더없이 훌륭한 출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꼬치는 단연 베이징 스차하이 호숫가에서 발견한 양꼬치님이다 호숫가를 거닐다 지칠 때쯤 만나게 되는 장소부터 매력적이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덕분에 최강 양꼬치를 영접할 수 있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두툼한 고기를 정성을 다해 구워낸다. 생각 없이 뿌려대는 것 같지만 언제나 같은 맛을 내는 양념의 배합도 훌륭하다. 어떻게 언제나 같은 맛인지 아느냐고? 천상의 맛을 잊지 못해, 첫날 다시 찾아갔다. 이튿날 또다시 찾아가서 먹고 또 먹었다. 몰리홀리! 제대로 홀려버렸다.
그런데 사실 이 꼬치집은 베이징식 자장면으로 유명한 곳이더라.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짜장면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음식이다. 달짝지근한 춘장에 말아먹는 느낌의 우리 짜장면이 내 취향에 맞다. 베이징식 자장면은 그야말로 비빔국수, 된장 느낌의 누런 장에 쓱싹쓱싹 비빈다. 베이징식 자장면으로서 맛있을지 몰라도, 한국 짜장면에 익숙한 이들이 과연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적어도 한국인에게 이 식당은 자장면 맛집이 아닌, 꼬치 맛집이 분명하다.
훠궈는 사랑입니다
'훠궈'는 늘 같은 이름이지만, 도시마다, 식당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 시안에서 만난 훠궈(엄밀히는 훠궈탕이랄까)는 직선적이고 강한 타입이었다. 말수가 없고, 화끈했고, 속내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한 입 넣는 순간, 혀끝은 얼얼했고 이마는 금세 땀에 젖었다. 하지만 묘하게, 미워할 수 없더라. 도전할수록 빠져드는 사람 있지 않은가. 중국 여행의 시작, '꼬치'와 한데 어울렸던 그날의 훠궈는 사람이었다. 조금은 두려울 법도 한데, 당최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베이징에서 만난 훠궈는 달랐다. 조용하고 단정한 스타일. 구리솥 위로 피어나는 수증기처럼 느리게, 그리고 온화하게 다가왔다. 말 대신 눈빛으로 대화하는 스타일이랄까. 맑은 국물은 은근했고, 참깨소스 위에 올려진 양고기는 부드러웠다. 시안에서 만난 사천식 훠궈의 강렬함을 기대한 우리 가족은, 조용한 훠궈에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서서히 마음을 내어주고 있었다. 천천히,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오래도록 그렇게 훠궈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훠궈가 더 사랑스럽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 답을 하지 않으련다. 아직 만나지 못한 훠궈가 있기 때문이다. 훠궈의 원조라는 '충칭 훠궈'! 강하고, 기름지고, 거침없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 한 번도 충칭 훠궈를 마주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사실 우리가 충칭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충칭까지 가서 원조를 외면할 수는 없을 테다. 그렇게 되면 아마 '훠궈 삼국지'의 최종 승자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의 맛, 아직 끝이 아니다
처음엔 풍경을 보러 갔고, 역사를 배우러 갔다. 아마 그랬을 것 같다. 적어도 출국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막상 남는 건, 불맛 제대로 밴 꼬치 하나,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훠궈 한 냄비였다. 시안의 꼬치는 입문이었고, 베이징의 꼬치는 반칙이었다. 그래, 훠궈 국물과 함께 우리는 한 뼘 더 자랄 수 있었다. 때로는 아프게, 또 때로는 은은하게 우리를 다그치는 훠궈님께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사실 다른 몇몇 음식들을 같이 적어 넣을까 했는데, 안 되겠다. 꼬치와 훠궈에게 불경을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 다른 먹거리는 다음에 또 끼적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