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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실격 May 12. 2023

멕시코 경계근무 1화

잿빛 어둠 속 버섯구름


 멕시코와 미국을 잇는 소노라 사막 도로 끝에  작은 검문소가 있다. 기껏해야 경비 둘로 이루어진 검문소는 예측하지 못한 검문을 치루기 때문에 과격한 저항이 자주 일어나는 위험지역이다. 

 

 가족은 위험지역에 장기 근무하는 찰스를 성실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운 사막에서 가장 위험한 국경지대에서 5년 이상 버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찰스는 가족에게 자랑거리자 마을에서 군인으로 추대해주었다. 그런 찰스에게 누군가는 조소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란 것들이 하나 같이 쓰레기 뿐이군."

 찰스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여 오른쪽 다리와 머리를 당했지만 운 좋게도 머리에 이상이 없다고 진단 받았다. 하지만 찰스의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지 못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전사라 칭했다.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있지만 간호사나 의사나 아버지는 정상이라 했다.

 폭우가 내리는 사막 도로 중간에 10평 사이즈의 작은 철제 건물 두개가 격렬한 폭풍우를 등진 채 들썩거렸다. 옆 건물에서 한 남자가 우산도 쓰지 않고 찰스가 있는 건물로 뛰어 들어왔다. 후배 경비원 리암은 젖은 몸을 털고 햄버거 봉지를 책상 위에 놓았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들어왔는데. 이미 찰스는 빵을 먹고 있었다. 

 “아내 분이 싸주신 거예요? 양이 적지 않아요? 간에 기별도 안 가겠는데.”

 “괜찮아. 다이어트 중이야.”

 “서바이벌 다이어트예요? 오늘은 비 와서 메뚜기 찾기도 어려울 건데, 하하!”

 식사를 마친 찰스는 지붕을 부수듯 노크하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밖에 차를 타고 타고 멕시코 도시로 향했다. 멕시코에 들어선 뒤에 가장 앞에 있는 타코집에 들어가서 다시 점심을 해결했다.


 남는 시간동안 총포사를 갔다. 도시 후면 골목으로 들어가면 험악한 인상의 메스티소 인들이 싸질러 놓은 암모니아 냄새와 담배 냄새가 진동한다. 비가 오는 날이라 미국 사막에서 건너 온 모래바람과 비가 섞여 더욱 오묘한 향기가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그래도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악취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비에 젖은 콘크리트 향기와 모래 냄새가 올라와 나름 기분 좋은 향기를 풍겨 시원하다. 다만 우산을 들고 있어도 습한 공기에 옷이 젖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휴대폰이 젖을지 몰라 휴대폰을 손에 쥐고 오랜만에 아내에게 전화를 할까 싶었지만 아니다 싶어 다시 젖은 바지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저번에 전화를 했지만 아내에게 돌아온 싸늘한 물음이 휴대폰에서 손이 더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왜 전화했어?” 라고 묻는 그녀의 물음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총포사에 들어갔더니 아까 골목보다 몇 배는 더 기분 나쁜 분위기가 공기를 압박했다. 나무로 된 가게라 비가 오는 날이면 내부는 바깥보다 더 습하기 때문에 다들 덥지도 않은데 몸에 이슬이 맺혀있다.


 총포사에서 불쾌한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 있는 놈들 중에 멀쩡한 사고회로를 가진 인간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혹시라도 피부가 닿으면 갑자기 주먹을 날리고 머리에 총구를 겨누기 일쑤다. 물론, 진짜로 쏘는 녀석은 거의 없다. 그저 자신에게 기분을 맞춰달라는 어리광이기 때문에 손님들과 주인은 총을 들면 평소 연습하던 역할극을 수행하듯 난동을 진정시킨다. 찰스 역시 경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녀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찰스라도 총포사에서 강도짓을 하는 인간은 경비 일을 할 때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그런 짓을 하겠지만 여기는 그런 인간도 종종 드나드는 곳이다.

 “어서 오세요.”

 남다른 덩치를 자랑하던 방랑자는 2m 10cm 정도의 덩치임에도 별 다른 옷도 없이 너덜너덜한 거적때기만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눈이 쳐져 있어 얼핏 보면 선한 인상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쫓아낸 경험이 있는 찰스의 시선으로 보기에 이 남자는 절대 들여보내서는 안 되는 1급 위험인물임을 확신할 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찰스의 예상대로 거구의 남자는 바로 진열대에 있는 권총을 집어 들며 주인에게 시비를 걸었다.

 “얼마요?”

 “600달러.”

 “5달러만 받아.”

 “비도 오고 꿉꿉한데 농담하지 마쇼.”

 “나는 농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도 안 좋아해.”

 라고 말하면서 주인은 허리춤에 있는 자동권총에 손을 올렸다. 남자는 그런 주인을 보며 산타클로스 같은 선한 미를 지어보였다. 

 “하하하, 농담이오. 뭐라고? 500달러?”

 “600달러.”

 “알겠어. 자, 여기.”

 하면서 남자는 수건으로 덮은 돈 주머니처럼 보이는 물건을 건네주었다.

 “확인해봐.”


 주인이 수건을 펴기 위해 허리춤에서 손을 빼내 남자가 건넨 수건으로 손을 옮기자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남자는 주인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거구의 주먹은 주인의 얼굴만큼 거대하여 맞은 사람을 진열대로 날려 보냈다. 주인은 머리를 박아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벽에 진열된 총들이 대여섯 개 정도 떨어졌다. 남자는 총을 들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님들은 일순간 모두 침묵했고 방랑자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3초 정도의 정적이 흐르자 한 사람이 가볍게 ‘풉’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 뒤에 안에 있던 손님들 모두 빵 터지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고 남자의 거침없는 박력에 손님들은 박수를 보냈다.


 찰스는 남자가 주인을 쓰러뜨린 모습에 분노를 느끼지 않았고 그렇다고 저들처럼 쾌락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분위기를 따라 시큰둥한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들 중 유일하게 박수를 보내지 않던 사람이 있는데. 유독 그 남자에게 시선이 갔다. 모자를 쓰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턱에 피부는 백인임에도 타서 그을린 자국이 선명하여 갈색 빛을 돌았고 지저분하게 수염이 덥수룩하여, 아까 주인에게 주먹을 날린 남자만큼이나 부랑자 같은 인상이 짙었다.


 시간이 지나 박수가 끝나자 다시 고개를 돌려 거구의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짐과 총을 챙기고 나갔다. 찰스도 점심시간이 끝나갔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남자와 같이 가게에서 나오게 됐다.


 남자는 우산을 피기 전에 아까 구한 수건으로 총을 닦기 위해 잠깐 자리에서 멈춰 섰다. 덕분에 거구의 남자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찰스는 자기 뒤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약간 꺼림칙했다. 우산 뒤에서 몰래 남자를 주시하여 남자가 무슨 짓을 하진 않을까 확인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라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은데다 먹구름으로 주위가 어두워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찰스도 번개가 치는 폭우 속에서 폭행범과 같이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은 두려운 상황이다. 당장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혹시나 뛰어간다면 수상해보일지 몰라 경건한 걸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체내 시간은 더욱 느리게 가는 것만 같다고 느낀 순간, 하늘은 겁에 질린 찰스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얀 백색 창을 내려 나무를 꿰뚫었다. 불빛에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고 나중에 거대한 폭발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발짝 늦게 터진 천둥소리와 함께 찰스의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찰스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만이 들리던 고요한 황야 속에서 총성과 천둥소리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큰 자극이었다. 세 발의 총성과 함께 찰스는 본능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젖은 땅에 무릎을 꿇고 5초 정도 지나서 총을 맞은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음을 자각했다.


 찰스는 고개를 돌렸다. 찰스 뒤에 있던 거구의 남자는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찰스 시야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음에도 찰스는 죽어가는 자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까지 위용을 펼친 남자의 기백은 어느새 뒤에서 그를 쫓아오는 사람의 살의에 완전히 묻혔기 때문이다. 


 폭우 속에 열기가 식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 총을 들고 가볍게 발을 내딛는 남자의 모습은 묵시록의 사자처럼 정적이면서 죽음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짐승처럼 냉정했다.


 찰스는 본능적으로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인간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찰스는 남자를 내버려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을 향해 전진했다. 뛰어가지 않았다. 부디 저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찰스는 남자가 얼마나 왔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전진만을 감행했다.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찰스를 시험하듯 뒤에서는 아까 총성보다 더욱 폭력적이고 거대한 폭음이 강철과 살덩이를 동반했다. 자신의 뒤에 일어난 일임에도 찰스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시야의 가장자리에 빛을 굴절시켰다. 찰스는 플라스틱 폭탄으로 일어난 거대한 폭발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벌칙게임이라도 받는 것처럼 자신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최면 했다. 우산에 강철 파편이 튀어 구멍이 뚫리고 하늘에서 절단된 사람의 팔이 떨어졌다. 불타고 있는 살점 탓에 주위에서 오징어나 야생동물을 구워먹을 때 나던 탄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암모니아 향기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조차 이렇게 강렬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 어릴 때 갔던 타이어 회사에서 나던 고무 타는 냄새도 이것보다 덜 독하다. 


 그럼에도 찰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목 안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울분을 참아내며 빠른 보폭으로 걸어갔다. 두려움에 오줌을 지렸지만 찰스는 반응 하지 않고 나아갔다. 검은 매연이 먹구름과 만나 세상을 완전히 어둠에 잠식시키는 순간까지 찰스는 절대 남자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폭발과 동시에 찰스는 일련의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추리했다. 의문의 살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걸음으로 자신에게 살의를 보내는 살인범. 자신에게 고개를 돌아보라는 듯 도발하는 폭발과 무의미한 살생. 굳이 왜 저런 번거로운 짓을 해야만 했는가? 에 대한 의문은 접어두고 찰스는 이제 빠른 걸음이 아닌, 전력 질주를 통해 남자에게서 달아났다. 바람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자 우산을 버리고 비를 뚫고 달렸다. 찰스는 그의 심기를 걱정할 필요가 사라졌다. 저 남자는 자신을 노리고 있다. 그러니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라던가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 같은 고민 따위 이미 뒤늦은 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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