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생각보다 더 의미 없다는 것을.
20대에는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정신없이 달려 취업에 성공한다면 조직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기 위해 또다시 경쟁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이제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챙겨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30대가 되고 40대가 된다면 나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책임이 강조된다. 새로운 꿈을 꾸기엔 책임감이 너무 무겁다.
한국의 "나이에 맞는" 이란 이러하다.
한국에서 열에 아홉은 이런 삶의 틀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틀은 꽤나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젊은 시절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성숙해져 가정을 책임지게 된다. 가능성이 낮은 꿈을 좇기보다는, 지금의 안정을 선택한다. 모두가 이 틀에 맞춰 살아간다면, 그 사회는 굉장한 연속성을 지닌, 건강하고 안정적인 공동체다.
다만,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을 하나의 틀에 맞추는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재수나 삼수, 혹은 다른 이유로 대학에 늦게 들어간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히고, 친구들보다 취업이 늦어질까 불안한 나날이 이어진다. 더 이상 20대가 아니라며 정착하지 않고 꿈을 좇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그들의 가능성을 가볍게 평가해 버린다.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며 별다른 근거 없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이다.
내게 상담을 신청하셨던 한 한국분은 나를 실제로 만나자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물었다. 그리고 내 답변을 통해 그는 군 복무 2년, 대학 4년, 로스쿨 3년이라 말하며 내 과거를 되짚어가며 내가 나이에 맞는 노력을 해 왔는지 판단했고 내가 또래보다 조금 늦었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나는 영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른 채 캐나다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을 두 해에 걸쳐 다녔다. 대학 입시 날짜를 놓쳐 1년을 허송세월처럼 흘려보냈다. 진학한 로스쿨에서는 1학년을 마친 뒤 2년간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군 복무를 했다. 이미 1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 로스쿨에 들어간 터라, 동기들과는 서너 살 차이가 났다. 그는 ‘연차에 비해 나이가 있으시네요’라고 말했다. 내 과거의 맥락은, 그의 판단에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캐나다에서 나이를 물으면 “왜?”라는 반문이 돌아온다. 이곳의 나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투나 태도가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스무 살의 사회 초년생과 은퇴를 앞둔 경영인이 함께 대학을 다니는 일이 드물지 않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수년간 진학을 미루는 경우도 흔하다. 스무 살에 결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흔에 첫 자녀를 갖는 이도 있다. 이들에게 나이란, 그저 선입견의 근거일 뿐이다. 그러니 나이에 따른 일반화를 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틀은 분명 그보다는 변수가 적을지 모른다.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 입학하고,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입학이 늦어지면 어김없이 "왜?"라는 질문이 따라오기에.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다니는 이들을 우리는 학생이라 부르기보단 ‘고학생’이라며 특별히 구분 짓기에.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바라는 이들을 무모하다고 표현하기에.
나는 이제 나이를 묻지 않기로 했다.
나이라는 선입견이 사라지자, 상대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취직하기 전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철없다는 판단을 내리기보다, 그가 얻은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떠한 이유로 늦게 사회에 발을 디딘 이에게는 뒤쳐졌다는 시선 대신 다른 경험을 했던 삶의 선배로서의 존경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라떼 아트를 익힌 사회 초년생에게서도, 기술공학을 공부하던 대학 2학년에게서도, 대학 대신 자동차 정비 일을 선택한 이도 내가 모르는 지식이 넘쳐흘렀다. 그 사람의 나이를 몰랐기에, 그들의 지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두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흐른다. 어떤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인가? 누군가가 한두 살 어리거나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을 판단할 만큼 중요한 기준일까? 상대방을 진심으로 알아가고 싶다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대신 수많은 다른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이라는 틀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고 있다. 나이라는 질문을 내려놓은 그 순간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