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많은 도움이 되었어.”
처음 맡은 일을 마쳤을 때, 파트너들은 나를 칭찬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일이란 게 사실, 변호사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칭찬이 진심이라기보다, 그저 격려의 의례처럼 느껴졌다.
첫 고객을 유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안에서 ‘고객’이라고 부르기에도 조심스러울 만큼의 작은 수임이었는데, 파트너들은 또 한 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맙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마음 한편에선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칭찬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더 깎아내렸다. 혹시 내가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기대치가 낮아서 건네는 형식적인 말은 아닐까. 스스로를 인정하기보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쪽에 더 익숙해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이처럼,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익숙한 한국인이다.
우리는 칭찬에 인색하다.
그 이유는 상대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도 있을 것이다. “잘했다”는 말보다는 “조금 더 노력해야지”라는 말이 더 건설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결국은 채찍이 되어, 성장의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하는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던지는 의미 없는 비판도 있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는 누군가가 잠시 자신감을 내비치기만 해도, 그 모습을 고깝게 보는 시선이 따라붙기에, 잘한 일을 해냈을 때조차, “그래도 아직 멀었지”라는 말로 눌러버리는 일이 흔하다.
상대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건네지지만, 때로는 그 기대가 무게가 되어 되돌아가기도 한다. 격려인 줄 알았던 말이 부담이 되고, 인정인 줄 알았던 시선이 오히려 주저앉게 만드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칭찬을 통해 앞당겨 끌어내려하고, 그 속도마저 조율하려 든다.
이곳의 칭찬은 달랐다.
여기서는 상대를 칭찬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꼭 필요하지 않았다. “잘했어.” 그 짧은 말 한마디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였다. 비판보다 칭찬이 기분 좋은 법이니 그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다만 이곳은,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타인의 비판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고 했다. 성장의 길은 남이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고 결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들의 칭찬은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단지 그 순간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태도였다.
그러니 이곳의 칭찬은 어쩌면 상대의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배려다. 다만 동시에, 그 안에는 상대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는 차가움도 함께 있었다. 존중과 무관심 사이, 따뜻함과 무심함 사이. 그 애매한 경계 위에 놓인 무자비한 칭찬이다.
결국 정답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적절히 칭찬과 비판을 조화롭게 건네는 데 있다.
이상이다. 그것을 완벽히 실현하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그 이상과 현실의 틈, 그 어딘가에 정답이 존재함을 알기에 우리는 그 균형 위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현재의 행복 없이는 그 미래도 공허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무의미한 비판도, 무분별한 칭찬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진심으로 상대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과, 그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려는 배려 사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그 온도. 그 미묘한 균형, 경계에 머무르려는 자각. 나는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