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왜 낳아야 하나요?
부활절에 교회에 가면 갓난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유아 세례라고 하는 행사가 있기 때문인데,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 기독교인의 자격을 주는 날이다. 아이들이 이 행사의 의미를 알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 의식을 행할 때마다(보통 목사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정해진 말을 한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아이에게 집중된다. 아이의 표정과 손, 발의 움직임에 따라 장내 분위기가 술렁인다. 아이가 웃으면, 덩달아 많은 사람들이 웃고 박수를 친다. 원초적인 인간 사회의 모습이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의 인구 통계가 발표되면서, 별안간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화재가 됐다(0.78). 작년 8월부터, 어느 유명 유튜버의 영상을 통해 출산율 감소의 심각한 수준에 대해 처음 들었고 그 이후로 쭉 출산율 통계를 관심 있게 봐왔기 때문에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서 걱정이라는 말은 10년도 훨씬 더 된 해묵은 이야기지만, 근래의 감소폭이 조금 크긴 하다. 2022년의 6월 출생아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2% point 감소한 18000명 정도인데, 1981년부터 월 출생아 수를 조사한 이례로 최저치라고 한다. 이후로도, 매 월 우리나라의 월 출생아 수는 동월 최저치를 계속 갱신하고 있는 듯하다.
저출산으로 우려되는 가장 큰 문제는 인구의 노령화다. OECD 출산율 꼴찌를 10년 넘게 차지하면서, 급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구 문제는 마치 복리와 같아서, 지수 함수의 꼴로 움직이기 때문에 변화의 폭이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경향을 꺾는것이 어렵다. 10년 넘게 출산율이 바닥을 친 결과, 우리나라의 노령화 지수는 곧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 될 것이다. 예측치이긴 하지만, 2030년부터는 노령화 지수가 200을 넘을 것이고, 2050년에는 400을 넘게 될 것이다. 노령화 지수는 65세 이상 인구를 15세까지의 인구로 나눈 것인데, 노령화 지수 200이 의미하는 것은 65세 이상 노인의 수가 15세 미만 아이들의 수 보다 2배 많음을 의미한다. 400이면 4배다. 노령화가 심해지면 그만큼 인구 부양의 부담이 점점 심해질 것임을 의미하게 되고, 이 경향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최재천 교수님은 동물들의 개체수 조절은 매우 자연스러운 적응 행동이라고 했다. 인간의 경우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10년 넘게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것은, 이곳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집단의식의 수준으로 이미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들이 모집단(population), 분위기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주변 환경을 살펴 결정한 행동들의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아무렇게나 살아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XAvkmaut5g
젊은 층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말해 주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다면 낳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개인 입장에서는 아이를 왜 낳고 기르고 싶을까?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것이 선천적인 본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좋은 경험이 후천적으로 학습되어, 아이를 낳는 선택이 세습된다는 사람들도 있다(그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이를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의 범주에 들었던 시절이 차라리 고민할 게 없어서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범주에 들어간 요즘 시대에는 저출산을 이야기할 때 '왜 낳지 않을까?'만큼 다뤄져야 하는 질문은 '왜 낳는가?'가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 출산과 육아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의아했던 몇 가지 부분들을 적어둔다.
- 아이 하나에 드는 교육비가 너무 크다. 사교육비 치킨게임의 결과로, 아이 하나 학원비가 한 달에 100만 원을 넘는 게 흔하다. 내 아이를 더 특별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과도한 지출로 이어져 왔으며, 결국 이후 세대들이 아이를 가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 내 아이지만, 육아는 남의 손에 맡기게 된다. 팀(보통의 경우 남, 여 부부) 내에 육아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 하던 일의 경력이 단절될 수 있으니, 육아는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둘 다 직장에 다닌다. 육아 휴직이 법으로 보장되긴 하지만,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 한 사람 몫의 월급이 그대로 육아 인건비로 사용되더라도, 일단은 그렇게 해야 한다.
- 2022년 한국 평균 초산 연령이(산모의 경우) 32세를 넘겼으며,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다. 35세부터 노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출산은 줄더라도 노산은 늘어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노산을 31세부터로 지정하고, 35세부터는 위험군이라고 분류했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출산을 미루는 이유가 무엇일까. 파트너에게, 또한 스스로에게 이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 시작한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