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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니 Apr 08. 2023

반도체 잡식(2) - 저전력화에 대해

반도체 저전력화는 벌크업의 길

 저전력화는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활을 걸고 달성하려는 goal이다. 특히 반도체를 굴려서 상품을 만드는 산업(예를 들면, 코인 채굴이라던가, 데이터 센터라던가)이 활성화된 2010년대 말부터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 반도체는 전력을 소모해 일을 하기 때문에, 전력 효율을 높이면 원가 절감 효과가 있을 테니 관심이 갈 수 있다. 


 일반 소비자들도 반도체 전력 효율을 많이 따질까? 가전제품을 살 때는 에너지소비 효율등급을 따져보듯, 반도체 집합체인 컴퓨터를 고를 때 전력 효율을 두고 고민할까? 


 일반 소비자의 경우에는, 반도체의 전력 효율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컴퓨터를 살 때 무슨 무슨 작업을 할 때 필요한 성능을 다 갖췄는지는 따지지만, 그 작업을 할 때 전력 효율이 어떤지 따지지는 않는다(제대로 따지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노트북의 경우에도, 전력 효율은 한 번 충전한 배터리를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문제이지 전기세를 따질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 국내 대표 PC/부품 판매 웹사이트인 '다나와'에서 CPU를 구매할 때도, 검색 항목에 전력 효율은 항목에 없다(오히려, CPU 방열에 필요한 전력 'TDP'는 항목에 있다). 일반 소비자에게 반도체의 소모 전력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출처: https://coolenjoy.net/bbs/votes/1776466?c_page=1&device=pc



 사실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저전력화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고객의 전기세 절감이나 에너지난에 기여하려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성능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하나의 소모 전력은 그 상한선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더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성능 향상을 위해서는 전력 효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 같은 전력으로 일을 더 빨리 더 많이 해내야 한다.


 반도체 하나의 소모 전력에 상한선이 있는 이유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발열이다. 반도체가 전력을 소모해 일을 하면 열이 발생하는데, 열이 너무 높으면 일시적으로 고장이 날 수 있고 심한 경우 영구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가 정상 동작 온도 범위는 규격으로 정해져 있는데, 보통 산업용 반도체는 섭씨 -40~85도다. 반도체를 만드는 원재료(현재는 주로 실리콘, 구리 등)를 바꾸지 않는 한, 일정 수준 이상의 전력을 쓸 때 발생하는 열을 줄이기는 어렵다. 전력을 더 쓰려면 냉각 장치를 써야 하고, 그 비용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두 번째는 전력 공급의 어려움이다. 반도체에 전력 공급은 pin을 통해 하게 되는데, 하나의 pin으로 공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러 pin을 통해 공급한다. Intel에서 CPU를 하나 사면 pin이 대략 1000개 정도 있는데, 그중 절반 가량을 전력 공급에 사용한다. 사실 말이 절반이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pin을 전력 공급에 사용하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력을 공급할 때 발열과 전압 drop(일종의 수수료가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이 발생해 고장이 날 수 있다. 최대한 많은 pin으로 골고루 전력을 공급해야 그나마 그 영향을 줄일 수 있다. 한 단위로 만들 수 있는 반도체 칩의 크기가 기술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pin의 크기를 줄이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체 pin의 개수를 늘리기가 어렵다.


 반도체 저전력화를 위해 설계/제작자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3가지 정도를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용하는 정격 전압을 낮추는 것이다. 소모 전력은 정격 전압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수식 모델인데, 이 모델에 따르면 전압이 반으로 줄면 전력을 1/4로 줄일 수 있다(물론 이는 매우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이다). 정격 전압을 낮추는 것은 복잡한 이야기인데, 주로 미세공정이나 소재와 관련이 있다. 두 번째는 전력 관리를 잘하는 것이다. 전력을 공급할 때는 전압을 높여서 하고(동일한 전력을 공급할 때, 전압을 높이면 전류가 줄어들어 부작용이 적다), 내부적으로 각 부분에 필요한 정격 전압으로 낮춰 유기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특히,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일시적으로 전력 공급을 끊거나, 최소한만 공급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새로운 소재를 도입하는 것이다. 반도체의 동작은 사용되는 소재의 물성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현재 주로 쓰이는 소재는 SiO2(실리콘)이며, GaN(갈륨 나이트라이드)등 다른 소재들도 전력 효율이 월등히 좋다는 이유 등으로 반도체 소재로 각광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실리콘이 주로 쓰이는 이유는 원료의 가격, 안정성, 제작의 용이함 등에서 두루두루 괜찮기 때문이다. 실리콘을 중심으로 구성된 반도체의 생태계(global value chain)를 한 번에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반도체 소재를 바꿔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 저전력화의 핵심이 성능 향상에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같은 일을 하되, 에너지를 덜 쓰자(혹은 환경을 덜 오염시키자?)는 것이 요즘의 에너지 트렌드로, 일종의 다이어트라면, 반도체는 방향이 다른 것 같다. 더 빨라지고 더 넉넉해지기를 바라는 수요가 끊이질 않는다. 차는 전기차로 바꾸면서도, 막상 차 내부의 전자 장치들 성능은 올라가길 바란다(물론 가솔린 기관보다 전기 모터가 성능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비건 가죽, 비건 화장품, 에코백, 친환경 세제와 비누를 쓰고 비건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정작 그 장면을 찍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 수는 점점 늘어나고, 사진을 공유하면서 더 큰 용량의 데이터가 발생한다.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장치의 수는 더 많아질 것이며, 더 성능이 올라갈 것이다. 반도체 저전력화는 다이어트가 아닌, 벌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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