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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니 Apr 15. 2023

생애 첫 이직 과정의 기록 (2)

자, 저를 뽑으시면 됩니다.

 여러 사람과 동시에 사귀는 경우가 보통은 없듯, 여러 직장을 동시에 다니는 경우도 잘 없다. 고로, 이직을 할 때에는 어려운 선택들을 마주하게 된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인가, 다른 직장을 갈 것인가. 다른 직장을 간다면 어떤 직장을 갈 것인가. 답이 명확한 문제가 아니라서, 선택을 잘하고자 고민을 하자면 끝이 없다.


 최근에 이직을 하면서, '이직을 왜 하는가'하는 질문과 수도 없이 마주했다. 이전의 회사를 나오는 과정에서, 지인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새로운 회사 면접 자리에서, 새로 출근한 회사에서 수차례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다. 묻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우를 잘 따져 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럼에도 나름 일관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진짜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솔직히, '딱 필이 왔다' 보다 더 훌륭한 답변이 없을 정도로, 이직 이유를 구체적으로 따지기가 어렵다. 연봉을 열 배로 올려준다던가 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직은 대부분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작용해 일어나는 사건이다 보니, 스스로를 포함해 모두에게 납득이 될 만한 이유를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 전 회사의 인사 담당자나 메니져: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 전 직장의 친한 동료: 

"대기업의 방식이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 새로운 회사 면접 자리: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에 원래 관심이 많았습니다." 

- 지인들:

"일이 많은 것에 비해 보람이 적다."


 어쨌든 이직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면, 그리고 옮겨갈 회사들을 몇 곳 봐놨다면,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잘 나오고, 잘 들어가고, 잘 지내는 것이다. 나오면서 겪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전 편에서 다뤘고, 잘 들어가는 것에 대한 얘기를 적어둔다. 취업 시장의 전문가도 아니고, 직장 경험도 그리 많지 않지만, 오랜 숙고 끝에 첫 이직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적는 것이니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적당히 참고할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랑 사귈래...?"

"..."


 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회사가 나를 뽑아줄 이유는 당연히 없다. 새로운 회사에 취직하려면 나름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뽑을 때 이력 사항을 검토하고, 면접을 보고, 또 필요하다면 평판(경력자를 뽑을 때는 평판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을 조사하기도 한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이에 맞춰서 경력 사항을 잘 정리하고, 면접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평판은 평소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직을 위해 특별히 노력할 여지가 적다.


 여러 준비 사항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히 나의 값어치를 부풀릴 필요는 없고, 나의 가치관과 성향,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그 일들에 대한 나름의 결론들을 알기 쉽게 보여야 한다. 

 

 먼저, 이력 사항을 잘 정리한 문서가 필요하다. 어떤 회사들은 이 양식을 따로 제공하는 곳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시기와 장소, 기간을 포함해서 정리하면 된다. 나름 기술직군의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교육, 일, 기술 이렇게 세 가지 항목만 정리해서 문서를 만들었다. 각 부분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넣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면접 자리에서 이력 사항에 대한 질문들은 많이 나올 것이고, 그때 잘 대답하면 된다(직무에 따라서는 평소에 작업물 소개를 자료를 정리해 두는 경우는 있을 것 같다. 포트폴리오)


 다음으로, 면접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잘 설명해야 한다. 어떤 곳들은 면접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고, 어떤 곳들은 면접 절차가 좀 두리뭉실한 경우가 있다. 어쨌든 핵심은 새로 갈 회사에서 나와 나의 이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과, 되도록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면접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소개팅이라던가, 다니던 직장에 신규 구성원이 온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외로 기본적인 부분에서 인상을 느낀다(그렇다. 우리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다).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등. 그리고 그 사람의 말투나 차림새, 그리고 태도(무드)나 감정 상태도 사람의 인상을 그릴 때 크게 쓰이는 것들이다. 물론 이런 세세한 것들을 다 면접 자리에서 신경 쓸 수는 없고,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다만, 기본적인 것들은 챙기면 좋다. 면접관에게 먼저 인사를 밝게 건네는 것. 딱히 시키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소개를 하는 것. 그리고 이력서 등 제출한 서류들에 대해서는 내용을 분명히 숙지하는 것(성의의 문제). 불쾌감을 주지 않는 복장과 몸 상태(악취 노노)를 준비하는 것 등이다. 추가로, 이전 경험들(이전 직장 이야기)에 대해 얘기할 때 너무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Do not play the victim.". 피해자 역할을 하지 마라, 혹은 피해자인 척하지 말라는 말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억울하고 마음 상하는 말이다. 면접관들은 내가 어떤 수모를 당하고 살아왔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지는 것이 면접 자리에서는 좋다. 면접관들이 나를 보고 좋은 인상을 느끼는 부분들은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나에 대해,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해 파악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또 가능하다면, 면접용 자료가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면접 자료는 사실 면접자(interviewee)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나의 이력 사항과 보유 기술에 대해서 지인(관련 지식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모두)에게 설명할 기회를 가져보면 그 어려움이 체감이 된다. 설명을 하다 보면 뭔가 보여줄 거리라도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면접관은 내가 한 일들에 대한 지식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에 맞춰 쉬운 버전과 어려운 버전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면접 자리에서 자료를 띄워놓고 내가 해온 일들을 소개하는 세션이 따로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이력서를 보면서 면접관이 필요한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하는 식일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실제로 해봐야 느껴지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직업 경험이 있는 지인을 모셔두고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애플의 창립자인, the late Steve Jobs는 회사의 중요 발표를 앞두고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폰 신제품을 소개하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세일즈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중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일은 연습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로 콘텐츠의 양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연습을 통해 전달(delivery)에 적합하도록 콘텐츠를 조직화하고, 다듬는 편이 낫다.


 마지막으로, 면접에서 질문에 답변을 할 때, 질문을 정확히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우 기본적인 것 같지만 굉장히 어렵다. 평소에 대화를 할 때에도 질문의 화두나, 앞 단어들만 듣고 성급하게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긴장감이 감도는 면접장소에서라면 빨리 답변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을 가능성은 커진다. 하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혹은 요지를 빗나간 답변을 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어려운데, 필요한 경우 양해를 구해서라도 확실하게 질문을 파악해야만 제대로 답변을 할 수 있다. "죄송한데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라든가, "죄송하지만 제가 질문을 이해 못 했습니다. XXXX를 물어보신 게 맞나요?" 라든가. 


"ㅇㅇ자전거 만들 때 손잡이 부분 디자인 하셨네요. 이 일은 왜 하신 거예요?"

"아 공기 역학에 무슨 이론을 고려해서 손잡이 각도를 이렇게 한 디자인인데..."

"????"  




 새 회사에 출근한 지 3주가 지났다.

 

 처음 출근을 했을 때, "회사에 출근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놀랐고, 조금은 두려웠다. 인생이 어떻게 꽃길만 있겠는가.  


 며칠 전 새 회사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가 일하게 된 팀의 리더분이 이런 얘기를 문득 하셨다.

 "이 회사에 오고서는 왜 일 할 때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실무도 겸해야 해서(최근까지 대기업에서 프로젝트나 인력을 관리하는 임원으로 계셨다) 일은 더 바쁜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왜일까요??"


 원숭이가 나무를 탈 때, 몸을 의지할 수 없는 체공 상태가 존재한다. 그 순간이 두렵다면 결국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이직도 그렇다. 어쨌든 기존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얻기까지 참 어려운 일들이 많고, 무엇보다 실패의 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다. 이직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의 위험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불타고 있는 나무로 가면 어쩌지?', '지금 있는 나무에 과일이 많이 나고, 새로 옮기는 곳엔 하나도 없으면 어쩌지?' 이런 고민들로 보낸 어려운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울컥 한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이겨내고 결국 점프를 했고, 지금은 다행히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다. 돌이켜보면, 길었던 고민의 시간은 결국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결과를 바꾸는 데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어쨌든 원숭이가 나무들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저 본능에 맡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314ITzsEc&ab_channel=%EB%82%B4%EC%85%94%EB%84%90%EC%A7%80%EC%98%A4%EA%B7%B8%EB%9E%98%ED%94%BD-NationalGeographic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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