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다 우리를 부정적으로 소모하게 되었나
최근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들에서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다. 5월부터 약 70일 동안 출장을 다니며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대만, 그다음은 미국, 그리고 광주였다. 어쩌면 바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간이 나와 잘 맞았는지, 피곤할 법도 한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익숙함을 떠나 타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다양한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새로운 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해 주었다. 잠시 일상의 흐름을 멈추고 내가 떠나온 일상과 그 안에서의 내 모습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퍽 친해진, 대만 동료들과의 대화는 나에게 인상 깊게 남았다. 어느 날 타이베이의 신이구 거리를 걷다가, 명품 매장이 가득한 백화점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동료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명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여자를 뭐라고 불러?"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적절한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조심스레 답을 꺼냈다.
"우리나라에선 ‘사치를 지나치게 즐기는 여성’을 지칭할 때 ‘된장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어."
동료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왜 된장녀라고 불러? 된장은 한국의 전통 음식 재료 아니야?"
나도 구체적인 유래는 모르지만, 아마도 한국적인 이미지를 빗대어 만들어진 표현일 거라고 대답했다. 이어 ‘김치녀’라는 단어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치를 좋아하되,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을 비꼬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동료는 고개를 갸웃하며 "김치도 된장도 한국을 대표하는 것들이네"라고 대답했다. 나 또한 다시 생각해 보니, 가장 평범하고 친숙한 우리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다가왔다.
사실 이러한 용어들은 특정 집단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를 한데 모은 뒤, 이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을 붙여 만들어낸 것들이다. ‘한남’이라는 표현 또한, 한국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압축된 단어가 아닌가. 우리 문화와 일상을 돌아보니, 우리에게 익숙해진 몇 부정적 단어들 속에, 특정한 사회적 편견이나 편협한 시선이 일반화되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한국의 일부분일 된장과 김치 같은 단어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사치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칭하는 데 쓰이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익숙함에서 떠나 돌아본 나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모습. 이번 출장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이처럼 내가 속한 일상과 문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었던 순간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