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일기를 매일 써볼까나
유난히 이른 한가위, 그리고 무더운 날씨. 예쁘고 맑은 하늘이 마치 더운 나라의 하늘을 닮았다. 새파란 하늘에 군데군데 움직임 없이 떠있는 구름들. 근래 맞이해 본 중 독특한 추석이다.
결혼한 친구들이 꽤 있고, 연휴를 틈 타 놀러 나간 친구들도 있어 이번 추석에는 그저 집에 충실하기로 했다. 술태배기들(고향 친구들)이 이번에는 어째 잠잠하냐는 어머니의 일침.
가족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그리고 그 돈은 형이 다시 보내주고, 혹은 올라갈 차비가 되어 돌아오고. 친척 어르신께 용돈을 드리면 어느새 다시 내 통장으로 돌아오는, 돈을 돌고 돌리고 서커스를 한참 하고 난 뒤 짧게나마 방 안에 파묻혀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이 정인가)
본가에 있는 나의 조그마한 방은 사실상 창고에 가깝다. 연중에 집에 와 지내는 시간이 며칠 되지 않을뿐더러, 군에 입대하면서 집이 이사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나의 방은 주인 없는 방과 같다. 군데군데 내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어떤 것은 박스에 담겨 있고, 어떤 것들은 박스를 나와 흩어지다가, 결국 없어졌을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어디서나 작용한다.
방 안 이곳저곳을 뒤적이며, 나의 옛날 사진들과 일기장 등을 발견해 구경했다. 고등학교, 대학 때 쓴 일기들이 재미있었다. 시기별로 저마다의 고충과 고민들이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당시에 지니던 고유의 정서와 감성의 깊이에 놀랐다. 10대 20대의 진하고 날이 선 생각들이 낯설다. 아마도 지금 남기는 기록들을 40대, 50대가 되어 읽으면 또 놀라겠지. 그야말로 격세지감.
중학교 때 쓴 일기, 그리고 군에서 쓴 일기가 없어 아쉬웠으나, 대신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해 기뻤다.
내 또래의 아버지가 쓴 일기를 보며, 나는 내 코드의 원류를 보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른 만큼, 여유가 몇 스푼 정도 빠져있어 거칠고, 비관적인 내용이 한가득 이었지만, 그 안에는 내게 쉬이 이해되는 감성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머니가 이 일기장을 정말 싫어한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날 이후, 종종 등장하는 나의 이름을 찾는 즐거움이 있었고, 또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슬픔이 적나라하게 담긴 글을 보며 사뭇 진지해졌다.
전반적으로, 30, 40대의 아버지는 부모님,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원망 속에서 삶을 보낸 것 같다. 늘 굳건한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 속에 잠겨있었을 생각에,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생계에 바빠 그랬는지 별 다른 불평이 없다는 것. (역시 배 부르고 땃땃해야 잡생각이 드는 법이다)
자녀를 낳는 것은 역사를 잇는 것과 같다. 유전자를 잇고, 정신을 잇는다. 어린아이는 마치 스펀지처럼 부모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래서 결국 나는 새로운 버전의(몹시나 닮은) 부모님이 되어 역사를 잇고, 다시 역사를 되물린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촘촘하게 나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 혹시 모를, 이 역사를 이어갈 나의 자녀가 나를 좀 더 오해 없이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