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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니 Mar 20. 2023

명품 기계식 시계에 대한 고찰

명품 시계의 진짜 맛을 몰라서 그래 

 대학원에 다닐 때, 시계를 보러 간다는 친구들을 따라 백화점에 간 적이 있다. 친구들의 후보군에 든 시계들은 가격대가 수백만 원에 달했는데, 당시 스마트폰을 시계 겸해서 쓰는 내 입장에서는 충격 그 잡채였다.  


 아무리 시계가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비싼 시계를 산다고? 혹시 뭐 로또라도 당첨됐나?  


학생이던 나와 달리, 당시 직장인이었던 친구들은 너도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 슬슬 시계가 눈에 들어올 거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애플워치를 사긴 했다. 어쨌든, 그때의 사건을 통해 명품 시계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특히, 명품 시계 대부분이 기계식 방식을 쓰기 때문에 명품시계 VS 전자시계 대결 구도로 봤다.

 

 반도체는 정확한 시간이 생명이다. 반도체 내부의 회로들은 거의 대부분 클럭 신호(일종의 시계)라는 것에 맞춰 동작한다. 마치 지휘자의 지휘봉을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이런 클럭 신호도 반도체 회로 기술로 만드는데, 일반적으로는 수십 킬로 헤르츠(KHz)나 수십 메가헤르츠(MHz) 정도의 클럭 신호를 석영 물질의 발진을 이용해 만든다. 이 방식은 그야말로 쿼츠 시계에서 쓰는 방식인데, 사실 ‘쿼츠’의 뜻이 석영이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반도체들이 필요로 하는 클럭 신호는 이보다 주파수가 훨씬 높다. Intel의 PC용 CPU 대부분이 2~4 GHz 정도의 클럭 신호에 맞게 동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높은 주파수의 클럭 신호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어려운 기술들이 필요한데, 쉽게 말해 석영으로 얻은 클럭 신호를 참고해(referencing) 더 빠른 신호를 만든다. 석영이가 박수를 한 번 치는 동안 박수를 여러 번 치는 식. 


 시계의 성능(정확도와 정밀도)으로 치자면, 명품 시계의 기계식으로는 전자식을 이길 수 없다. 반도체로는 수백억 분의 1초를 다루기 위한 초 정밀 시계를 만드는 것이 흔하다. 그래서 고작 1000분의 1초 단위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는 각종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명품 시계 브랜드의 광고가 보이면 뭔가 어색하다. 그런 경기에 정말 명품 기계식 시계가 필요하다고? 모터스포츠에서 기록 측정을 아직도 명품 시계를 보면서 한다면, 그건 측정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제대로 측정할 필요가 없어서 하는 요식행위일 것이다.


 전자식 시계는 기계식 명품 시계보다 싸다. 비싸서 모두를 놀라게 한 애플워치 울트라 라인업은 백만 원을 웃도는 수준인데, 명품 기계식 시계들은 백만 원부터 시작이다. 사실 명품을 두고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 전자식이 싸다. 


 극한 환경을 고려해도 전자식이 낫다. 전자식이든 기계식이든 극한 환경변화에서는 시계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 기계식 시계는 주변의 압력, 가속도(+중력), 온도, 그리고 자성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전자식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반도체 소자는 온도와 자성에 민감하고, 여러 물리적인 변화(압력이나 가속도 등)가 공급 전압에 영향을 준다면 큰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누가 더 환경 변화에 민감한지는 모르겠지만, 전자식 시계가 ‘스마트’하다면, 오차의 문제는 동기화로 해결된다. 정말 정확하고 믿을 만한 시계와 자주 시간을 맞춰보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시계가 그토록 정확한 이유인데, 이 방식은 이미 사용자도 모르게 스마트 워치가 흔히 하는 일이다. 


 심지어 전자식 시계의 최고봉인 스마트 워치에는 시계 외의 편리한 기능들이 정말 많다. 날씨나 메시지 확인을 할 수 있고 전화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빈도를 많이 줄여준다. 심지어 셀룰러 기능이 있는 스마트워치라면 가끔 스마트폰 없이 워치만 차고 다녀도 된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신체 정보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와닿는다. 심박수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운동을 하면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 또한 요즘에는 체온을 모니터링해서 여성의 생리 주기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명품 시계가 주는 예술적 가치와 심미적 기능은 가성비나 오차 따위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또한 예술적 가치와 심미적 기능 외에도 기계식 장치 자체로서 가지는 장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밥을 자주 안 줘도 된다든가 내구성이 좋다든가 하는. 그리고 아직 명품 시계를 가져보지 못한 나는 모르는, 진짜 가져본 사람들만 아는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근데 애플워치에 이미 길들여진 나에게 누가 명품 시계를 선물하면 그냥 집에 모셔두지 차고 다니진 않을 것 같다.) 


 만약 명품 시계의 ‘맛’도, 스마트워치의 기능도 포기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명품 시계의 시계줄이라도 전자식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시계 줄 안에 반도체 부품을 넣어 기본적인 신체 정보 센싱과 진동 알람 기능 정도를 넣는 것이다. 혹은 시계 줄에 작은 스마트 워치 페이스를 부착할 수 있는 방식도 좋을 것 같다. 기계식 시계에 전자 기능이 추가된 하이브리드 워치도 요즘 많이 쓰던데, 이런 방식도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명품의 맛을 잘 지키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 맛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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