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공정 어디까지 갈 것인가
삼성전자와 TSMC가 3nm 반도체 공정 기술을 두고 치열한 접전에 나선다고 한다.
무슨 말일까? 사실 삼성전자 주식 오른다는 얘기 아니면 뭐 딱히 관심 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 '반도체 강국'인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기 때문에, 한 번 감이라도 잡아 두면 어떨까. 혹시 아는가, 먼 훗날 해외여행 중 사귄 외국인 친구가 BTS가 아니라, 삼성전자 팬덤일지도 모른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해진다는 의미는 쉽게 말해 더 얇은 샤프심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메롱'이라는 글씨를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게 쓴다고 하자. 5mm 샤프심으로 쓸 때 보다 1mm 샤프심으로 쓰면 더 작게 글씨를 쓸 수 있다. '메롱' 좀 작게 쓴다고 뭐 대수는 아니지만, 작게 쓰면 일단 작아진다. 백과사전도 더 작은 글씨로 쓰면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물론 글씨는 돋보기를 써야 간신히 보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와 TSMC가 한 판 붙는다는 3nm 공정 기술의 수준은 아주 단순한 비유로는 3nm 샤프심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아주 단순한 비유이고, 실제로는 획과 획 사이의 간격을 3nm까지 좁힐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만, 아무튼 대단히 작게 뭔가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3mm 샤프심으로 '메롱'을 쓸 때 보다 가로 세로가 각각 백반배씩 작게 쓸 수 있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제조 단가(경제성)가 싸진다는 게 좋다. A4 크기 용지 한 장으로 명함 20장을 만들 던 것과 비교해, 명함 20만 장을 만들면 당연히 명함 제조 단가가 줄어들 것이다(명함은 너무 작게 만들면 사람이 읽을 수 없어 무용지물이지만, 반도체는 작아져도 일단 괜찮다).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이 엄청난 노력을 들여 미세화로 나아간 것은 그것이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순히 원가가 줄어서 장땡이면 좋겠지만, 당연하게도 작게 그리기 위해 드는 부가 비용도 물론 고려해야 한다. 바로 그 부가 비용이 이제는 진짜 문제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면 더 싸게 만들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것도 이제 다 옛날 얘기가 됐다. 작게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이제 너무 비싸다. 단적으로, TSMC에 반도체 제작 수주를 넣을 때, 7nm로 할 때보다 5nm로 할 때 5배 이상 비싸다. A4 한 장에서 나오는 명함 수는 대략 2배 늘겠지만(7/5=1.4, 1.4*1.4=1.96), 5배 더 비싸진다니. 물론, 반도체는 작아지면 얻는 다른 이점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작게 만드는데 드는 돈이 너무 커져버린 이유는 꽤 복잡해서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작게 만드는 게 경제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0.1nm 공정 기술을 두고 치열한 접전에 나선다!라는 기사가 앞으로 나올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런 기술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아닐까.
1.6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배 증가할 것이라던 고든 무어의 예측. 무어의 법칙. 무어가 이같이 예상한 때도 역시 경제성을 가장 우선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그리고, 2023년인 지금은 포스트 무어 시대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