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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Sep 27. 2020

코로나로 우린 거대 공동체가 되었다

동일하게 멈춤으로 서로를 공감하기 시작했다



언니, 이곳은 하루 종일 가을비가 내리고 있어. 지난여름 내내 비추던 햇빛은 이제 당분간은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 같아. 이맘때의 독일은 어둡고 흐린 하늘을 가진 적막한 시간으로 들어가기 시작하거든. 그런데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크리스마스 마켓마저 사라진다고 하니 벌써부터 컴컴한 겨울이 두려워져.



코로나, 얕보았다.

모든 축제가 취소된 지금과는 달리 지난 2월의 독일은 카니발의 마지막 열기로 정말 뜨거웠어. 하지만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코로나가 우릴 찾아왔지. 처음엔 모두들 금방 지나갈 무언가로 여기곤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더라. 의사였던 독일인 친구도 언론에 속지 말라며 내게 별일 아닌 듯 이야기했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이토록이나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어.



코로나 위기, 서로 믿지 않는 우리

눈에 띄게 상승하는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눈으로 확인하며 사람들은 점차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어. 마스크를 써야만 대중교통을 탈 수 있었고,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지. 길거리의 사람들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트를 가보면 전쟁이라도 난 듯 식료품 구역이 텅텅 비어있었어. 햄스터 사재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는데,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도 신뢰가 많이 무너져 가고 있었어. 두려움이 마음 안에 존재하니 여유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었던 거야.



나아진 듯 보이는 세상, 목 조여 오는 근심

다행히도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이 찾아오면서 가게의 문과 우리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어. 여전히 제한된 공간과 규율 아래였지만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밖으로 나왔고 조금 더 많은 햇살을 쬐었어. 햇살 아래 많은 것이 이전보다 나아진 듯 보이더라. 잔디밭의 화기애애한 얼굴들, 마스크 없이 다니는 거리의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아진 기분을 경험하며 코로나로 아팠던 세상이 조금 나아진 줄 알았어. 그런데 슬프게도 아니었어. 실업률은 말이 안 되는 수로 치솟고 있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잠 못 이루고 있었어.



뜻하지 않게 맞은 휴식, 남들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하던 일을 중단해야 했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했어. 코로나로 인해 심지어 대학 입시도 연기됐어. 모든 것이 미뤄지고 끝없는 기다림의 숙제만이 주어졌지. 이 뜻하지 않은 공백은 우리를 외롭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놀라운 시간을 선물해주었어. 여유가 생기니 내 안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서 있던 내가 타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되었어. 저 친구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가족들은 괜찮을까, 그들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야.



세계인이 함께 고민하다, 거대 공동체가 되어가는 우리

우리 인생에 이토록이나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을까? 우리 모두는 단 한 번도 동일하게 멈춤을 경험한 적이 없었어.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단 한 가지 문제를 두고 고민하며 일상 안에 어려움을 느껴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던 거야. 부분적으로는 있었을지 몰라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어쩌면 우리는 위기인 줄만 알았던 이 코로나 시기를 통해 공동체 범위를 늘려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로 잃은 것들만 생각하기엔  시간들이 너무도 귀중해. 위기 속에 더욱 치열한 고민이 있고,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속에 움직임이 잖아. 코로나 위기, 코로나 블루 앞에 무너져도 괜찮. 넓어진 공동체가 다시 서로를 일으켜 세워줄  있을 테니까.


언니, 함께 겪는 위기는 더욱 단단한 우리를 만들어줄 거야. 조금 더 "우리"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먼 곳에 있지만 마음으로 함께하자. 그리고 이 위기를 힘차게 극복해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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