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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Dec 21. 2020

이별 징후

1. 상대에게 점점 관대해진다

알아요. 연인이라고 결코 모든 것을 털어놔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한발 늦게 알게 됐을 때는 그게 참 그렇더라고요. 많이 서운했어요. 연애 초반에는 서운한 마음을 곧잘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당신이 찡그릴 표정이 보기 싫어 그냥 넘어가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기며 그렇게 저도 관대한 여자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 당신께 '제주도야'라는 말을 들었던 그 날은 어쩌면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심장이 차갑게 떨어져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저 깊은 심해로 떨어진 것 같았거든요. 당신으로 인해 많이도 울었지만 그 날의 울음은 무언가 달랐어요. 어쩌면 그 날 마음 안의 끈질기게 묶여있던 무언가가 당신을 놓아버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는 너무도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어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했는데 어쩌면 이제는 지쳐가고 있나 봐요. 말수가 없는 당신은 눈을 보아야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는데 이제 난 당신의 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당신 마음의 조그마한 느낌들을 꺼내 이야기해주길 바랐어요. 당신의 하루를 나에게 나눠주길 기다렸어요. 당신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인 걸 알기에 닦달하지 않았어요. 그저 기다리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었거든요.


멀리도 가버렸네요. 그런데 당신은. 이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는 것 알아요. 당신의 결정 앞에 나의 고민은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하루를 당신과 나누고 함께 내일을 고민하는걸 오랫동안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야 나는 달라진 우리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 멀리 떨어진 심장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이 올지 나는 알 수 없어요. 당신이 얼마나 나를 놀라게 할지 또한 알 수 없어요. 서운한 것이 많은 여자 친구였는데 이제는 고개 끄덕이며 당신을 보내줄 준비하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담담하게'라는 말은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심장은 생명력이 강해 여전히 저를 많이 아프게 하거든요. 


당신의 마음은 어떤지 묻지 않기로 했어요. 말수는 없지만 행동이 강한 당신은 아마 천천히 당신의 뜻을 보여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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