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
Dear Eun,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쾰른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나는 아주 깊은 잠에 빠졌어. 세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덜컹이는 기차에 몸을 맡긴 채 꿈속을 여행했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그 꿈에서 나는 가족과 친구들이 나오는 TV를 보며 웃고, 울고 있었어.
잠에서 깬 나는 부랴 부랴 환승게이트를 향해 갔지만 걷잡을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좌석에 앉고 보니 내 안의 무의식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것만 같았어. 왜 누구나 그런 삶을 동경하잖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 내가 경험한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색을 띠는 삶. 그런데 그거 알아? 어떤 이의 삶은 왠지 내가 조금만 앞으로 가면 손이 닿을 것만 같아서 더 애가 타는 거. 그런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내 것은 아닌 것. 나에게 향수병은 언제부터인가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Fernweh
'먼 곳을 향한 동경'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Heimweh
'향수(병)'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우리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말하듯 언니 너와 나의 삶은 꽤나 대조대는 듯 보여. 결혼과 가정,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갖게 된 언니를 보면서 가끔은 나도 그런 삶을 살면 어떨까 상상해 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도무지 이뤄내기 어려운 먼 곳의 어떤 것처럼 느껴진달까.
주변의 이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오고 친구들이 '취업과 돈'이라는 주제에서 '가정과 안정'이라는 대화 주제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나의 고민에는 조금 더 불씨가 붙은 것 같아. 결혼을 생각할 만큼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고 여전히 마음 안에 존재하지만 물리적인 거리와 삶의 격차가 너무도 벌어져서 이제는 내 것이 아닌 느낌을 갖고 살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성장 중에 있는 내게 마냥 그리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사랑하는 동생이 먼 길을 떠나는 것을 보며 언니에게도 꽤 많은 생각이 들었으리라 믿어. 2년을 다짐하며 유학길에 오른 동생이 3년, 4년 아니 어쩌면 평생을 그곳에서 머물며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은 채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매일 싸우게 될지도 몰라. 그 안에서 삶이 던져주는 과제들을 풀어나가며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신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형태가 다른 삶의 귀한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 곧 엄마가 되는 언니에게 마치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혹은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등과 같이 삶을 더욱 깊고 넓게 보게 만드는 고민과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이곳 독일이 평생의 최적의 장소라고도, 한국이 훗날 내 최종 목적지일 것이라 확신할 수 없어. 내면의 무의식은 한국에 있는 내 사람들이 그립다고 말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이 주는 만족감도 마음 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라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는 먼 훗날이 되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8,564km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서 있는 나에게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매일의 삶에 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이야.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통화 한번 그리고 나를 향한 친구들의 그리움 섞인 응원 이 모든 것이 지친 나를 일으켜 주는 가장 위대한 에너지이가 되어주고 있어. 그로 인해 나는 조금씩 마음에 품은 꿈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야.
유난히 버겁고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이던 2020년 작년 한 해. 그리고 낯설지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맞이하고픈 2021년 올해. 우리가 마음에 품은 Fernweh(동경)과 Heimweh(향수)가 어떤 빛깔을 띄며 삶을 만들어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안의 긍정적이고 밝은 빛이 우리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마음으로 희망해 봐.
Frohes neues Jahr!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