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은아,
얼마 전 동생이 독일 대학원 2차 시험을 보기 위해 독일로 떠났어. 평생 해외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타지에 혼자 있었던 적이 없었던 동생이기에... 걱정이 많이 되는 거 있지? 동생도 조금씩 서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동안 우울해했어. 혼자 독일에 가는 게 무서워 포기하고 싶다는 동생에게 난 마음을 굳건히 잡으라고, 네게 온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조금은 매몰차게 말하기도 했어. 지금 유학을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그렇게 시도조차 안 하고, 한국에서 머물게 되면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버티지 못할 거라고.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동생은 결국 마음을 굳건히 잡고, 독일로 떠났어. 독일로 가는 당일, 동생이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봤는데도 너무 걱정이 돼서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공항에서 머물렀어. 아빠는 동생이 독일에 무사히 도착하는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시더라. 동생은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독일에 도착했고, 지금은 독일에 간 지 일주일이 됐어. 한국에 있을 때도 그리 많이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독일에 일주일간 떨어져 있으니 너무 보고 싶은 거 있지? 동생한테 페이스톡을 걸기도 하고, 연락이 안 올 땐 잘 있는 건가 하고 걱정이 되곤 해.
은아, 너랑 비슷한 지역이면 좋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너한테 부탁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참 아쉬워. 기차로도 먼 거리라고 하더라고. 그래도 너한테 동생이 사는 지역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볼 때마다 걱정을 내려놓곤 해. 이렇게 정신없이 동생을 독일에 보내서 그런지 친구들의 연락도 잘 못 보고, 내 삶도 잘 못 챙긴 거 있지? 이번 주에야 다시 마음을 잡고, 이렇게 글을 쓴다.
이제 곧 있으면 동생도 독일에서 시험을 보고, 2월쯤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그러면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4월부터 독일에서 2년간 지낸다고 하더라고. 독일에서 지내는 기분은 어떨까? 은아 너랑도 매번 연락을 이어오고, 독일 생활에 관해서 물어봤었지만, 동생이 가서 그런지 동생의 독일은 어떨지 너무 궁금하더라. 나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 왜 학생 때 교환학생 한번 안 갔다 왔는지.. ㅎㅎ 가끔은 후회되기도 해. 외국은 여행으로도 가보고, 회사 일 때문에도 가보긴 했지만 막상 살아보는 건 너무나 다를 것 같아. 은아 네가 가끔 한국에서 생활하던 너와, 독일에서 사는 너는 달라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게 너무 궁금한 거 있지. 나에게는 외국에 살고 싶은 로망이 있나 봐.
은아, 네가 알려준 독일어 단어가 생각 나.
동경 Fernweh
독일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향수. 한국에서 타지에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동경. 향수의 반대말이라고 알려줬지. 정말 나에게는 외국에 산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어.
한국에 살면 주변 사람들이 다 나를 알잖아. 내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떤 말투를 갖고 있는지 까지도. 가끔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나를 알고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 어느 곳에 가면 나는 굉장히 조용한 성격. 어느 곳에 가면 나는 굉장히 활발한 성격. 그들의 색안경이 나를 만드는 건데, 그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행동을 해도 낯설어해.
외국에 살게 되면, 이 모든 틀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되고 싶은 사람 그대로. 스물아홉 살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은 어차피 나를 모르니까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지. 그럼 조금은 자유로워질까?
한국에서는 '착한'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면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 늘 착한 행동을 해야만 하고, 가끔은 듣기 싫은 소리도 묵묵히 들어야 할 때가 있어. 왜냐하면 내가 다른 행동을 했을 때 그들은 당황스러워할 테니까. 그니까 나를 좀 내버려 두는 곳으로 가고 싶어.
외국에 산다고 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새로운 가치관을 만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 같아.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처음으로 만나는 거잖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밖으로 마음껏 헤어칠 수 있는 세상을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
외국에서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을 적다 보니 내가 현재 삶에 갖고 있는 불만들이 동경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내가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삶이 그냥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지금 내가 그런가 봐. 이 모든 부담에서 도망가고 싶다. 어릴 때 부리지 못했던 투정을 지금이라도 부리고 싶나 봐. 참 철없지?
외국에 대한 동경은 어쩌면 은이 너와 동생에게서 비롯된 거 일 수도 있어. 은이 너도 정말 너무나 잘하고 있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동생도 이제 막 시작했지만 정말 멋진 도약을 시작했으니까. 조금씩 시작하고 있고, 꿈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뛰는 걸지도 몰라.
나도 언젠가 외국에서 살 수 있을까? 그날을 생각하면 괜스레 행복해진다. 정말 난 현실 도피성 사람인가 봐 ㅋㅋ 그날을 위해 나도 조금씩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경력들이 무너지지 않게 다시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도와줘서 고마워 은아.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