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나 자신, 자존감 세우기
긴 이별의 아픔을 지나 누군가를 만났다. 첫 만남부터 강렬했던 그는 대화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꺼내보였다. 솔직한 그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지만 왠지 모를 짜릿함이 불안했다. 하지만 그와 만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그는 자주 나를 찾아왔다. 관계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싫어하던 그였지만 밥을 먹을 때 바라봐주는 눈빛 그리고 품에 끌어안아주던 따스함이 좋아 그럴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주 기분이 바뀌었고 어느 날은 차가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 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의 날들에는 다정했고, 나와의 미래를 그리는 듯한 말을 자주 하던 그에게 나는 점점 빠져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운명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내가 부합할 때면 칭찬으로 기분을 좋게 했고 그에 미치지 못할 때는 어딘지 모를 찝찝한 기분을 선사했다. 그럴수록 그에게 예쁨 받고 싶었고 그가 만든 세상 안에 나를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한 번도 '을의 연애'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그와의 만남은 큰 충격과 동시에 끊을 수 없는 중독을 선물했다. 마음속에 어릴 적 트라우마가 깊게 자리 잡은 그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있었고 나는 그런 그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친구와 연인을 넘어 그의 치료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며 우리의 운명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칭찬으로 둔갑된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열정적이고 저돌적으로 다가오던 그의 행동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스킨십의 주도권은 그에게 가있었고(그가 원할 때만 오로지 입 맞출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볼 때의 눈 속의 반짝이던 총기는 희미해져 있었다. 단 5개월 만이었다. 이별 징후임을 알면서도 나는 마치 사슬에 묶인 양처럼 그에게 종속되어 있었기에 그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머지않아 이별 선언을 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 나를 떠난다는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속아 나는 그를 붙잡았다. 그가 엇나가는 사춘기 고등학생처럼 행동할수록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에게 빠져들었다.
한차례의 이별을 겪고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나는 끝없이 매달렸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며 외로워 겪는 심리적 불안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했다. 다행히 첫 번째 이별은 그에게도 미련을 남겼는지 돌아왔다. 관계의 주도권은 당연히 그에게 있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는 다시 처음의 열정을 찾는 듯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자신만의 기준에 부합하는 여자인지 아닌지 아닌지 끝없이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종속되어 조종되듯 자라온 그에게 나는 자신의 모에게 소개해줄 사람인지 아닌지로 판단해야만 할 대상이었던 것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높았던 나는 만남의 초기에 그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잘하는 면'만을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인정받지 못한 나의 다른 부분들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불행의 늪 속에서 자존감을 잃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만남을 지속하는 자체가 미련한 짓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에게 끌렸지만 사랑임을 확신하지 못했던 나는 세 번의 이별 끝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나를 찌르는 그를 오래도 붙들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것을 벗어던졌다. 나를 옭아매는 이것은 사랑이 아님을,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없는 그와의 만남에 미래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 우리 관계를 '한낱 불장난'이라 칭한 적이 있다. 부정하지 않았지만 긍정도 하지 않았었다. 그가 주던 그 자극이 위험함이 아닌 '특별함'이라 착각했기 때문에. 누군가 했던 그 말이 맞았다. 짧고 열정적으로 빛나던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희생도 없고 이해도 없던 그곳에 애초에 사랑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를 갉아먹던 연애는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곁에서 한결같이 나를 막아 세우던 친구, 끝없는 변덕과 나를 밀어내던 그에게 지친 나,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던 마음의 공허가 결국 지독한 악순환을 끊었다. 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불안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실을 보기 시작하자 '이별'의 필수 불가성을 깨달은 것이다.
누군가의 아래 수동적인 사람으로서 길들여진 사람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정말이지 어렵다. 마치 쓰라린 채찍을 주어도 달콤한 당근 몇 개를 고대하며 주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말처럼 말이다.
나를 밀어낸 사람 붙잡지 않는 법. 그것은 붙잡아보고 난 후에만 알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는 스스로 깨닫는 날이 와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설사 붙잡아서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 해도 스스로가 진정 나다울 수 없다면 그 연애는 더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우리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사랑하기 위해 찾아야만 하는 이유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 사랑하면 모난 부분도 받아들일 마음의 넓이가 생긴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내 마음의 넓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와 맞지 않음을 '틀림'으로 만드는 그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잔인한 욕심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나, 사랑스러운 우리 존재.
그것을 아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