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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Jun 30. 2020

아빠의 결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실을 잡고 있는 우리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지도 10년이 지났고, 나는 어느덧 이십대의 후반 길에 올라섰다. 현재도 독일에서 지내지만 사실 이렇게 떨어져 지낸 것은 스무살 이후부터 계속되었다. 어린 나이에 마치 유학을 떠나듯 부산을 떠났던 내게 아빠는 그야말로 둘도 없는 친구였다. 겁이 많았던 내게 삶은 참으로 억세게 다가왔지만 당신이 있어 괜찮았다. 그는 참 솔직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당신이 가진 것, 내게 지원해줄 수 있는 범위, 그리고 현재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까지 아빠가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은 오직 젊은 날의 아픔 그 뿐이었음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나도 참 열심히 살았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허나 아빠는 한순간도 나를 구속하거나 당신의 욕심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말하며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내가 되길 원하셨다. 허나 나는 당신의 바람과는 달리 꽤나 먼 길을 돌아 왔다. 경쟁과 두려움 앞에 나의 민낯을 철저히 보였다. 보여지는 성과는 언제나 최고였으나 마음은 자주 무너졌고, 타인의 외면이란 것이 얼마나 시린지 경험했다.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리라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슬프게도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함께 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참 많이도 울었다. 부산에 내려갈 때면 당신께 나의 마음을 진실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꽉 쥐려하는지 아빠는 알고 있었다. 나의 눈물 앞에 마음이 아팠을 당신이지만 아빠는 나를 잠잠히 두었다. 해가 변할수록 달라지는 나를 보며 당신은 더욱 자주 미소지었고, 단단해진 나를 보며 그동안 홀로 나만의 철학을 쌓았다 말한다. 꽤나 먼 길을 돌아온 나이지만 당신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값진 시간이었는지 깨닫는다. 후회로 가득찼을 그날들이 당신으로 인해 의미를 가진다.



그토록 나를 세워주던 당신이 지금 힘들다. 전화 목소리 속의 당신은 지쳐있었다. 작년 이맘때 당신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말하며 결혼을 하면 어떻겠냐 물었다. 그동안의 많은 만남 아래 단 한순간도 결혼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았던 아빠의 그 말에 참 놀랐지만 기뻤다.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딸의 무거운 마음이 한시름 가벼워졌다. 나는 시간을 내어 한국으로 갔고 지금의 새어머니를 만났다. 첫인상이 괜찮았다. 나는 그녀가 꽤 마음에 들었다. 허나 오랜시간 둘이 익숙했던 내게 새로운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 나보다는 10살도 더 어린 그녀석과의 삶이 나는 걱정스러웠다. 아니 실은 그 아이가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날이 오면 어쩌나 싶은 염려가 나를 덮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분명 아빠를 사랑하시고, 동생과 어머니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어느 한사람의 희생만을 원치 않을 것임을 알기에 아빠의 선택과 가족의 미래에 믿음을 가졌다. 아빠와 같은 사람을 아버지로 둔 나는 언제나 감사했다. 허나 그 넓은 사랑을 나 홀로 누리기엔 너무도 크다는 것을 신은 아셨는지 이제는 그것을 나눠받게 하신다. 마음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을 가진 우리 안에 더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두 사람이 내리던 결정을 이젠 세사람, 네사람이 함께 한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가족이란 이름 아래 아빠의 어두운 목소리는 극복될 것이다. 먼 곳에서 당신을 응원하는 내가 있고, 곁에서 손 잡아주는 두 사람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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