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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Aug 17. 2020

작은아씨들 에이미에 대하여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된다.


초등학생도 되기 전에 만화로 된 작은아씨들을 10번도 더 넘게 봤다. 겨울의 난로같이 따스하던 그 책은 어린이였던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이십 대가 된 지금 그저 이름만으로 기억하던 작은아씨들을 영화로 다시 접했다. 감동은 물론이고 주인공 조에 한동안 푹 빠져 '조 앓이'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운을 다시 느끼고자 영화를 한번 더 보았고, 최근에는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깊게 들어갔다. 표지가 낡도록 읽은 책이었는데, 막상 20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많은 부분이 새로웠다. 한 문장으로 이 책의 교훈을 읊을 수 없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사랑이란 것은 선명히 느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요소는 주인공 조를 비롯한 자매들의 성격 형성 과정이었다. 영화와 책 속의 조는(네 자매 중 둘째이자 주인공) 그야말로 독보적인 매력으로 묘사된다. 아름답진 않지만 소박하고 솔직하며 엉뚱하다. 때로는 털털한 남자아이 같지만 사실 내면은 누구보다 여려 툭하면 눈물을 흘린다. 배려심이 많고 뜨거운 심장을 지닌 그녀는 재치마저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글을 써내는 재주가 훌륭하여 훗날 작은아씨들을 펴내는 대작가가 된다. 그녀의 수많은 장점은 조를 더욱 아름다운 소녀로 상상하게 했으며, 글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더욱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에이미는(네 자매 중 넷째이자 재주가 많은 소녀) 조금 달랐다. 다른 언니들에 비해 욕심이 많고 강한 에이미가 처음엔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조를 사랑했던 로리와(자매들과 어릴 적부터 함께한 이웃이자 조의 가장 친한 친구) 결혼까지 한 그녀에게 괜히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허나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내면이 성숙한 숙녀가 되어가는 에이미에게 나도 모르게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에이미는 잘하고 싶은 게 많았다. 늘 당당했고, 원하는 것은 얻어야만 하는 그런 아이였다. 타인보다 자신의 것이 먼저였던 그 아이는 지극히 이타적인 다른 자매들과 비교되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어쩌면 비현실적 이리만큼 천사 같은 자매들 속에 그녀가 얄미워 보였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에이미는 언니들에 비해 욕심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고, 허영심과 자만심이 많은 자신을 늘 경계했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잘 알았기에 신께 기도하며 성격을 다듬어 나갔다.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포기했는데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에이미의 굳센 용기가 마음에 들었다." (로리의 내적 고백)


그림을 사랑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연구해온 에이미는 예술적 천재성과 재능의 차이를 어느 날 깨달았다. 자신의 재능을 객관적으로 보았고 위대한 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당당히 접는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새로운 길을 간다. 오랫동안 공들여온 일이 그저 나에게만 가치 있는 일이 되었을 때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허나 위대한 사람들이 그렇듯 에이미 또한 다시 일어난다. 잠시 슬픔이 깃든 고뇌에 잠기지만 삶을 살아갈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모색한다.


그녀의 인격형성 부분과 꿈을 좇아 삶을 만들어가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소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묘사된 부분도 있지만 보여지지 않은 내면의 치열한 고민들이 글의 중간중간에 묻어난다. 사랑을 성취하고 부를 이룬 그녀의 결말은 어쩌면 그녀 인생 전반에 걸친 노력의 당연한 보상이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선하고 여유로운 품성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아가면서 수많은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야만 겨우 남들처럼 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은연중에 에이미를 싫어했고, 인간적인 면이 너무도 많은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고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알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깎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녀를 공감했다. 누구나 주인공 조처럼 애쓰지 않아도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에게 단점이 없고, 그녀가 삶 안에 인격형성을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조도 불쑥 화내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남들보다 더 갖고 싶어 한다. 내가 느낀 에이미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 중 특히나 두드러지는 사람이다. 나는 삶의 많은 부분 속에 조나 베스(네 자매 중 셋째이며 성자와 같은 아이. 하지만 일찍 죽는다.)처럼 타고난 좋은 성품을 가진 이들을 동경하며 살아왔다. 허나 에이미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노력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본다. 스무 살이 겨우 넘은 에이미는 책의 끝에 다른 언니들과 비교해도 충분히 훌륭한 숙녀로 성장한다. 내가 그 단계에 이르려면 아직도 먼 길이 남았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다양한 삶을 이제는 인정한다. 신이 부여한 다양한 성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듬어 가는 이 과정이 바로 우리 삶의 과제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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